[칼럼 691]‘연못남’ 탈출법/고미석 논설위원/동아일보/2016.09.21 올해 4월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랑’의 주인공은 ‘연못남’(연애 못하는 남자)이었다. 30대 중반의 호텔 사장은 직원들의 사소한 실수에도 걸핏하면 “당신은 해고!”라고 고함쳤다. 다른 능력은 출중한데 유독 이성과의 관계 맺기에 한없이 서툰 주인공의 .. 칼럼읽기 2016.10.22
[칼럼 690]‘피라미(?) 인터넷은행;/박학용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29 드디어 한국에도 인터넷 전문은행이 곧 등장할 모양이다. ‘최초’ 타이틀은 K뱅크로 갈 공산이 커졌다. 카카오뱅크보다 먼저 금명간 금융위원회에 본인가를 신청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본인가 절차를 거치면 이르면 10월 말 영업을 개시할 수도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표현을 빌리면 2.. 칼럼읽기 2016.10.21
[칼럼 689]스위스의 선택/황성준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28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공짜처럼 보여도 나중에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운이 좋아 공짜를 즐긴 사람이 아닌 다른 그 누군가가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어쨌든 진짜 공짜는 없다. 그럼에도 공짜를 좋아하는 것이 보통 사람.. 칼럼읽기 2016.10.20
[칼럼 688]장사익 ‘찔레꽃’/김종호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27 줄기의 가시에 찔리면 피가 나곤 해서 “찌르네” 하던 것이 그 이름의 유래라는 찔레. 보릿고개를 넘기며 찔레의 여린 새순을 꺾어 먹은 적이 있는 사람은 하얀 찔레꽃을 우연히 보기만 해도 왠지 모를 애잔함이 가슴에 밀려오기 십상이다. ‘찔레꽃’이 대중가요에 드물지 않게 등장해.. 칼럼읽기 2016.10.19
[칼럼 687]미르/이현종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26 ‘용(龍)이 한류라는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한다.’ 용의 순우리말인 미르를 따온 ‘재단법인 미르’는 지난해 10월 발족할 때 이런 포부를 강조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박근혜 대통령이 1952년생 용띠다. 한국문화의 상징이라는 의미에서 미르라는 이름을 지었을 수도 있지만 박 대통.. 칼럼읽기 2016.10.17
[칼럼 686]네이선 헤일과 로버트 김/최영범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22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의 중앙정보국(CIA)에는 독립전쟁 당시 약관 21세의 나이로 영국군에 교수형을 당한 네이선 헤일(Nathan Hale) 대위의 동상이 손과 팔이 각각 묶인 형상으로 우뚝 서 있다. 그는 1776년 9월 21일 롱아일랜드 전투 때 자원해 영국군의 움직임을 염탐해 보고하다가 체포됐다.. 칼럼읽기 2016.10.16
[칼럼 685]똑같은 이해찬과 유시민/송평인 논설위원/동아일보/2016.09 서울대 인근에는 광장서점이란 곳이 있다. 1978년 이해찬 의원이 이 서점을 열었다. 처음에는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팔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는 주로 고시책을 파는 곳이 됐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값비싼 고시책까지도 할인 한 푼 안 해주고 팔아 수익을 올린 덕분에 많은 서점이 명멸하.. 칼럼읽기 2016.10.15
[칼럼 684]정세균의 오락가락 미국관/한기흥 논설위원/동아일보/2016.09.19 한때 “미국산 쇠고기는 굳이 먹을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던 정세균 국회의장이 미국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역설했다. 정 의장은 15일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설에서 “한미동맹은 한국에는 사활적 요소”라며 한국의 번영에 기여한 것에 헌사를 아끼지 않았다. 13일 폴 라이언 하원 의장.. 칼럼읽기 2016.10.14
[칼럼 683]모병제는 정의로운가/이진 논설위원/동아일보/2016.09.13 ‘고바우영감’은 김성환 화백이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한 시사만화다. 원화(原畵)가 등록문화재에 오를 만큼 4컷 속에 우리 현대사가 담겨 있다. 1957년 11월 20일자 968회는 ‘빽이 없어 미친 사람’이 “빽 빽 빽” 소리치며 다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고바우영감은 “더 좋은 빽을 .. 칼럼읽기 2016.10.13
[칼럼 682]원자폭탄, 과거와 현재/이진 논설위원/동아일보/2016.09.12 한수산의 장편소설 ‘군함도’는 일제 말기 일본 하시마로 끌려가 석탄을 캐는 징용자들의 사연을 다뤘다. 일제는 징용자들을 ‘징용에 기쁘게 응한 사람들’이라며 응징사(應徵士)라고 불렀다. 이들은 미쓰비시광업이 소유한 하시마의 30도가 넘는 해저탄광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죽도.. 칼럼읽기 201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