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봄, 소주 봄, 소주 ―김완(1957∼ ) 벚꽃잎 분분분 날리는 부곡정에 들어선다 연탄불 돼지 삼겹살 구이 상추에 마늘, 매운 고추 얹어 된장 쌈 하니 세상살이 여여(如如)하다 도가지 헐어 내온 갓지에 소주 한 잔 하니 가야 할 길들 환해진다 --------------------------------------------------------------------------------.. 시감상 2016.10.25
<392>희망촌 1길 희망촌 1길 ―임형신(1948∼ ) 은사시나무 포자가 눈처럼 날리는 언덕에 희망촌이 있다 상계4동 배수지 아래 철거민들이 모여들어 사십 년 넘게 희망을 먹고 산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골목마다 만신들의 깃발이 펄럭이고 그 옆에 엉거주춤 태극기도 붙들어 매져 있다 기울어진 담벼락에 .. 시감상 2016.10.22
<393>월요시장 월요시장 ―여태천(1971∼ ) 어제와 같이 오늘의 날씨를 생각하며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본다 향료를 싣고 인공의 도시를 찾아다니는 푸른 눈의 낙타 길게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걸어오고 있다 도시의 사막에서 발이라도 빠질까 조심조심 걷는다 되새김질을 하며 얇은 모래의 언덕을 오르.. 시감상 2016.10.21
<394>달걀 달걀 ―고영(1966∼ )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창을 닫았다. 어둠을 뒤집어쓴 채 생애라는 낯선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은 조금씩 좁아졌다. 강해지기 위해 뭉쳐져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있는 힘껏 외로움을 참아야 했.. 시감상 2016.10.20
<395>묵매 묵매(墨梅) ―강영은(1956∼ ) 휘종의 화가들은 시(詩)를 즐겨 그렸다 산 속에 숨은 절을 읊기 위하여 산 아래 물 긷는 중을 그려 절을 그리지 않았고 꽃밭을 달리는 말을 그릴 때에는 말발굽에 나비를 그리고 꽃을 그리지 않았다 몸속에 절을 세우고 나비 속에 꽃을 숨긴 그들은 보이지 않는.. 시감상 2016.10.19
<396>황홀 황홀 ―허형만(1945∼ ) 세상의 풍경은 모두 황홀하다 햇살이 노랗게 물든 유채꽃밭이며 유채꽃 속에 온몸을 들이미는 벌들까지 황홀하다 더불어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내가 다가가는 사람이나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 모두 미치게 황홀하다 때로는 눈빛이 마주치지 않는다 해도 그렇.. 시감상 2016.10.17
<397>강남춘(江南春) 강남춘(江南春) -이흔복(1963~) 산에 산에 두견 너는 어이 멀리를 우짖는가. 너는 어이 가까이를 우짖는가. 달 가운데 계수나무 그늘도 짙을러니 내 후생하여 너를 엿듣는 봄은 이리도 화안히 유난하다. 일찍이 내가 먼 곳을 떠돈 것이 내가 나를 맴돎이었으니, 미쳐 떠돎이 한결같이 쉬지 않.. 시감상 2016.10.16
<398>전화 전화 ―데이비드 예지(1966∼ ) 전화가 올 때 당신은 외출 중이다. 메시지를 듣고 답신을 하자, 그다지 친하지 않은 누군가가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의 파트너가 소식을 전해준 것이다. 그녀는 당신이 개인적으로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떠나.. 시감상 2016.10.15
<400>Edges of illusion (part VII) Edges of illusion (part VII) ―정재학(1974∼ ) 바다에 가라앉은 기타, 갈치 한 마리 현에 다가가 은빛 비늘을 벗겨내며 연주를 시작한다 소리 없는 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부끄러워져 당분간 손톱을 많이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백 개의 손톱을 기르고 날카롭게 다듬어 아무 연장도 필요 .. 시감상 2016.10.14
<401>공 속의 허공 공 속의 허공 ―채필녀(1958∼ ) 공이 대문 한쪽에 놓여 있다 저 공, 운동장 한구석에서 주워왔다 그 한구석도 어딘가에서 굴러왔을 것이다 또 어딘가에서 또 어딘가에서 왔을 것이다 무심하게 놓여진 공은 또 어딘가로 가고 있을 것이다 공은 한 번도 스스로 굴러본 적이 없다 우주가 돌아.. 시감상 2016.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