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의 노래 무사의 노래 나에겐 부모가 없다 하늘과 땅이 나의 부모 나에겐 집이 없다 깨어있음이 나의 집 나에겐 삶과 죽음이 없다 숨이 들고 나는 것이 나의 삶과 죽음 나에겐 특별한 수단이 없다 이해가 나의 수단 나에겐 힘이 없다 정직이 나의 힘 나에겐 비밀이 없다 인격이 나의 비밀 나에겐 몸.. 시감상 2016.08.25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 위대한 사람들의 무덤을 바라볼 때 내 마음속 시기심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미인들의 묘비명을 읽을 때 무절제한 욕망은 덧없어진다. 아이들 비석에 새겨진 부모들의 슬픔을 읽을 때 내 마음은 연민으로 가득해진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부모들 자신의 무덤을 .. 시감상 2016.08.24
내게는 그분이 내게는 그분이 ―사포(기원전 625년 무렵∼기원전 570년 무렵) 내게는 그분이 마치 신처럼 여겨진다. 당신의 눈앞에 앉아서 얌전한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그 남자분은. 당신의 애정 어린 웃음소리에도 그것이 나였다면 심장이 고동치리라. 얼핏 당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미 목소리.. 시감상 2016.08.23
휴전선 휴전선 ―박봉우(1934∼1990)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 시감상 2016.08.22
월광(月光), 월광(月狂) 월광(月光), 월광(月狂) ―김태정(1963∼2011) 불을 끄고 누워 월광을 듣는 밤 낡고 먼지 낀 테이프는 헐거워진 소리로 담담한 듯, 그러나 아직 삭이지 못한 상처도 있다는 듯 이따금 톡톡 튀어 오르는 소리 소리를 이탈하는 저 소린 불행한 음악가가 남긴 광기와도 같아 까마득한 상처를 일깨.. 시감상 2016.08.20
합창 시간 합창 시간 ―박은정(1975∼ ) 지휘자의 붉은 반점이 짙어졌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겠지 우리는 파트를 나누어 노래를 부른다 소프라노와 알토가 불협하고 테너와 베이스가 제 목청에 넘어갔다 강당의 커튼이 휘날린다 신의 이름을 부를수록 세기말이 즐거웠던 사제처럼 우리는 간절하게 .. 시감상 2016.08.20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는가. 내가 나를 소유하는 순간은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인가, 아니면 내쉬는 동안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에 무엇을 쓸지 연필이 알고 있는 정도, 또는 다음에 어디로 갈지 그 연필심이 짐작하는 정도. - 잘랄루딘 루미 시감상 2016.08.19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 위대한 사람들의 무덤을 바라볼 때 내 마음속 시기심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미인들의 묘비명을 읽을 때 무절제한 욕망은 덧없어진다. 아이들 비석에 새겨진 부모들의 슬픔을 읽을 때 내 마음은 연민으로 가득해진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부모들 자신의 무덤을 .. 시감상 2016.08.18
안양천 메뚜기 안양천 메뚜기 ―최두석(1956∼ ) 라면 봉지, 팔 꺾인 인형 따위를 띄우고 시꺼멓게 흐르는 안양천 천변의 바랭이 풀밭을 걷다가, 떼를 잃은 메뚜기 한 마리 보았다 벼 이삭이 누렇게 고개 숙일 무렵 유년의 들판을 온통 날개 치는 소리로 술렁대게 했던 메뚜기 그래 너를 이십 년 만에 만나.. 시감상 2016.08.17
신문 신문 활자들만 모른 체하면 신문은 이리저리 접히는 보자기, 나는 신문이 언론일 때보다 쓸쓸한 마른 보자기일 때가 좋다 그 신문지를 펼쳐놓고 일요일 오후가 제 누에발톱을 툭툭 깎아 내놓을 때가 좋다 어느 날 삼천 원 주고 산 춘란 몇 촉을 그 활자의 만조백관들 위에 펼쳐놓고 썩은 .. 시감상 201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