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 메뚜기 ―최두석(1956∼ )
라면 봉지, 팔 꺾인 인형 따위를 띄우고
시꺼멓게 흐르는 안양천
천변의 바랭이 풀밭을 걷다가, 떼를 잃은
메뚜기 한 마리 보았다
벼 이삭이 누렇게 고개 숙일 무렵
유년의 들판을 온통
날개 치는 소리로 술렁대게 했던 메뚜기
그래 너를 이십 년 만에 만나는구나
― 메뚜기
― 뛰었다
― 어디로
붙잡으러 뛰어다니다가 술래잡기가 되고
그렇게 꼬리를 물고 놀이는 이어지고
쉴참에는 논둑에서 나란히
누구의 오줌발이 멀리 뻗치는가
시합도 하고
사타구니에 거웃이 돋을 무렵
놀이는 끝나 동무들 뿔뿔이
고향 떠났다
아니 고향에서 살 수 없었다
메뚜기가 들에서 살 수 없듯이
돌연한 불청객에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이제 사뿐히 풀잎 위에 올라앉아
쉴 새 없이, 더듬이를 움직이는
메뚜기를 보며 문득 생각한다
소꿉놀이의 단짝이던 계집애를
그리워한다. 앉아서 누어도
오줌발이 사내애들보다 멀리 뻗치던
명님이, 풍문에 의하면 니나노집
작부가 되었다는 계집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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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물감을 드럼통으로 쏟은 듯 뻘겋고 퍼런 개천이 시외버스 차창 너머에 있었다. 사람을 질리게 하던 그 유독해 보이는 풍경을 떠올리니 버스 안으로 스며들던 화공약품 냄새도 매캐하게 감돈다. 벌써 삼십여 년 전 기억인데, 이 시의 안양천 풍경은 그 오륙 년 뒤의 것일 듯. 그리고 개천은 여러 동네에 걸쳐 흐른다. 화자가 천변을 걷던 안양천은 내가 본 안양천과 구역이 다를 테다. 그래도 ‘라면 봉지, 팔 꺾인 인형 따위를 띄우고/시꺼멓게 흐르는’ 개천이라니 그 황량함이 많이 빠지지 않는다. 꽃이나 만발했으면 몰라도 거친 풀이 우거진 그 천변을 거닐 마음을 내기 쉽지 않을 텐데, 화자는 어인 일로 거기 내려갔을까. ‘천변의 바랭이 풀밭’이 화자가 이십 년 동안 떠나 있던 ‘유년의 들판’을 떠오르게 해서일 터. 거기서 우연히 발견한 메뚜기 한 마리가 행복한 유년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이어서 ‘사타구니에 거웃이 돋을 무렵’ 고향을 떠나 뿔뿔이 헤어진 친구들 생각이 난다. 메뚜기, 팔팔하고 기운이 뻗쳐 사내애들도 다 이겨 먹던 천방지축 그 계집애 같구나. 어릴 적 화자의 단짝 소꿉친구. 그 소꿉놀이에서 화자와 ‘명님이’는 신랑각시가 아니라 엄마아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고향에서 살 수 없어’ 흩어진 사람들과 ‘들에서 살 수 없어’ 서울 근교 공장 지대의 오염된 개천가에 흘러든 한 마리 메뚜기…. 서정 속에 사회의식이 깃든 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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