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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소설가의 일 / 김연수

시온백향목 2017. 6. 2. 14:21

[서평]소설가의 일 / 김연수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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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한 느리게 글 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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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이란 뭘까? 이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 지 궁금하다. 대체로 어떤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까.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든지, 원고지에 펜으로 쓰든지 간에. 어쩌면 책을 읽고 있는 모습 혹은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을. 때에 따라선 소주를 마시면서 동료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까지도 떠올리기도 할 터이다. 그러고 보면 소설가의 일이란 소설가가 하는 일 전부가 해당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하다못해 길을 걷거나 목욕을 하는 등의 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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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체적으로 소설의 동기와 핍진성, 플롯과 캐릭터, 문장과 시점 부분을 구수한 입담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설가는 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이다. 김연수는 프루스트가 쓴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역본 11권짜리를 쳐다보면서 말을 풀어 나간다. 프루스트를 실용서처럼 읽자는 건 알랭 드 보통의 주장이라고 하면서. 근데 11권짜리를 어떻게 읽을까? 자기 전에 10페이지씩 읽으면 다 읽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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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문장은 어떻게 짓는 것일까? 김연수는 각 장면마다 구체적인 표현을 넘어서 핍진한 문장을 쓰라는 것이다. 소설에서 핍진한 문장이란 반박할 부분이 한 곳도 없는 완벽한 이야기를 말한다. 핍진성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 본성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일관되게 행동하기 때문에 인과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긍정적인 사람의 표정과 부정적인 사람의 표정은 무척이나 다르며, 그들이 걸리는 병의 형태도 다르다. 핍진성은 소설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토대다. 소설가는 구체적인 문장 위에 핍진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까지가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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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을 쓸 때 플롯과 관련해서 경험하는 신비한 일이 있다는데. 완벽한 플롯을 짜고 진행하다 보면 그 소설을 끝낼 수가 없다고 한다. 몇 매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몇 매에 긴장이 고조되고, 몇 매에 절정이 오는지 미리 다 계획하고 쓰면 절대로 소설을 완성할 수 없다고 한다. 플롯이라는 건 소설을 다 쓰고 나서야 그게 어떤 플롯인지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다 쓰고 난 뒤에 플롯을 짤 수 있다. 플롯부터 짜고 소설을 쓰는 건 뭐랄까 바지 위에 팬티를 입는 꼴이라고 하니 이해가 쉽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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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세이쇼나곤이라는 11세기 일본의 고위 궁녀가 쓴 수필집마쿠라노소시의 문장이 나온다. 김연수가 은밀한 곳의 멋스러움을 감탄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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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겨울밤 아주 추울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불 속에 파묻혀서, 저 멀리서 그윽하게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는 것도 정취가 있다. 그런 때면 닭이 처음에는 부리를 날개 속에 처박고 울어서 그 울음소리가 아주 멀리 들리다가, 날이 밝아옴에 따라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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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밤. 달이 뜨면 더할 나위없이 좋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광경은 보기 좋다. 반딧불이가 달랑 한 마리나 두 마리 희미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것도 운치 있다. 비 오는 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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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시키려면, 캐릭터의 관점에서 주인공에 관한 더 구체적인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하며, 플롯의 관점에서 주인공을 거듭 좌절시켜서 독자들이 그를 걱정하게 만들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소설을 쓰겠다면, 여기에 더해 독자를 감정이입시키기 위한 문장을 쓸 줄 알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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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매일 소설을 쓰게 되면 가장 느리게 쓸 때, 가장 많은 글을, 그것도 가장 문학적으로 쓸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하다. 느리게 쓴다는 것은 문장을 공들여 쓰고 플롯을 좀더 흥미진진하게 구성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소설이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는 서사예술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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