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정권의 선전상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의 나팔수’라는 별칭처럼 선전선동에 대해 유명한 말을 여럿 남겼다. “언론은 정부의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거나 “대중을 가장 빠르게 뭉치게 하는 것은 증오심이다”는 지금 들어도 섬뜩하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나치가 광기에 물든 집단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괴벨스 선전의 핵심을 찌른 표현은 역시 “99개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을 적절히 배합해놓으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부정한다. 그러나 반복하면 나중에는 믿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세 사람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는 중국의 고사성어 ‘삼인성호(三人成虎)’나 “100번 우기면 진실이 된다”는 일본 속담과 비슷한 말이다. 거짓을 반복해서 진실처럼 믿게 하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선전술이라는 얘기다.
박영수 특검에서 연일 드러나고 있는 사실들이 괴벨스 선전술을 떠올린다. 예술을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비판적인 예술가들을 억압한 것이 나치와 다를 바 없다.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의 발달로 선전술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가공된 사실에 리얼리티를 더해 진짜가 가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게 어렵지 않다. 인터넷 가짜뉴스에 대선 주자까지 속아넘어간 것이 결코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세상을 뒤흔든 태블릿 PC가 조작됐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이런 선전술의 피해자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괴벨스의 여비서 브룬힐데 폼젤이 지난 27일 10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최후의 나치 증언자로 불리는 그는 평생 침묵을 지키다 100세 되던 해에야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나는 괴벨스의 사무실에서 타자기를 두드렸을 뿐”이라며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몰랐다고 증언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라고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나치에 저항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했다. 그런 폼젤도 최근 “세상에 한 일 때문에 괴벨스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한다. 나치에 복무한 것에 대한 본격적인 참회는 아니었지만 죽음을 앞두고 여론 조작의 희생자임은 술회한 셈이다. 속지 않고 살고 있다고 자신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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