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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84]한국인의 게놈/이기환 논설위원/경향신문/2017.02.02

시온백향목 2017. 2. 21. 23:14

 한국의 건국신화는 천손(天孫)신화와 난생(卵生)신화로 나눌 수 있다. 백성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내려온 고조선 단군의 아버지 환웅과, 오룡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북부여 해모수는 대표적인 천손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반면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락국의 김수로 등 6가야 임금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천손신화와 난생신화의 교묘한 융합이다.


 주몽은 천손신화의 주인공인 해모수와 정을 통한 어머니(유화 부인)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 하늘의 빛이 자꾸만 유화 부인에게 비치면서 주몽()을 임신했다. 또 박혁거세가 태어난 알의 옆에 천마가 기다리고 있다가 사람들이 다가오자 하늘로 올라갔다. 이 밖에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에 싸인 황금그릇 안에서 알 6개가 확인됐는데, 이들이 6가야의 시조이다. 나무에 매달린 황금 궤짝에서 태어난 김알지도 천손(나무)과 난생(궤짝) 신화의 융합을 의미한다. 천손신화의 주인공은 나무··하늘 등에서 땅으로, 난생신화의 주인공은 알··궤짝·() 안에서 밖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몽·혁거세·김수로 등 한 사람의 탄생과정에 두 가지 신화가 섞인 이유는 무엇일까.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는 정신적인 고향이 다른 두 종족의 사회결합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천손신화는 북방유목 문화, 난생신화는 남방농경 문화를 각각 뿌리로 두고 있다. 만주와 한반도는 바로 두 신화의 융합지점인 것이다. 남방의 고인돌, 북방의 금관 문화가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울산과학기술원이 최근 러시아 극동의 악마문 동굴에서 수습한 7700년 전 인골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도 다르지 않다. 한국인의 뿌리가 수천년간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융합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실제 유전적 구성은 남방계 아시아인에 가깝단다. 설령 천손신화로 무장한 유목 세력이 난생신화 지역을 지배했어도 절대 다수의 백성은 농경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동안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여겨졌던 천손·난생의 결합신화가 수천년 만에 과학의 옷을 입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