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최고의 외교관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최고의 외교관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헨리 키신저는 영원한 외교관으로 불린다. 키신저가 미국 정치에 뛰어든 적은 없지만 뛰어들었다고 해서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키신저는 귀곡자의 책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귀곡자의 제자인 소진과 장의는 춘추전국시대 합종연횡의 현란한 외교를 펼쳤다. 소진과 장의도 통치자를 위해 봉사하는 외교 책사였을 뿐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전형적인 외교관이다.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부에서 쭉 공직을 하고 외교부 장관에 올라 유엔 사무총장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교부 장관을 주로 외교관 출신이 하지만 서구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에 이은 2인자 정치인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외교를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반대로 외교를 잘 안다고 정치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다음 날 “정치는 배타적이면 안 되고 모든 국민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외교관 출신으로 처음 대권에 도전했다가 좌절한 사람의 회포를 그렇게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독일 사회철학자 베버는 “정치란 열정(Leidenschaft)을 가지고 단단한 판자에 강하게 조금씩 구멍을 뚫어가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열정이란 말에는 고통(Leiden)이란 단어가 들어있다. 반 전 총장은 고통 없이 꽃가마 타고 대통령이 되려다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자 바로 내려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보고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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