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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이 사준 시집에서 이태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를 읽고 아호를 ‘자야’로 지어주기도 한 백석은 결국 신분의 벽에 막혀 함께 생활한 기간이 3년에 불과했지만, 김영한의 평생을 지배한 셈이다. 서울 성북동의 고급 요정 대원각을 일군 뒤 송광사에 시주해 1995년에 고즈넉한 사찰 길상사로 변모하게 한 배경도 달리 없다. 당시 1000억 원으로 평가되던 대원각을 선뜻 내놓은 것이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내게 그의 시는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이었다. 내가 평생 모은 재산은 그이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답했다. 1997년에 백석문학상을 제정한 일도 그 연장선이었다.
“시인이란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던 백석이 자야를 그리워하며 쓴 시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하고 시작해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하고 끝난다. ‘흰 바람벽이 있어’ ‘여승’ ‘국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 백석의 다른 절창들도 노래로 만들어 둘의 사랑 이야기를 재구성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공연이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지난 11월 5일 시작, 내년 1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연출자 오세혁은 “아름다운 가치들이 사라지거나 퇴색되고 있다”며 뮤지컬화는 그 안타까움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되새기고 되찾아야 할 가치가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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