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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48]마오리족/백광엽 논설위원/한국경제/2016.12.15

시온백향목 2017. 1. 8. 22:00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40대 이상이면 바닷가에서 한 번쯤 흥얼거려봤을 노래 연가(戀歌)’. 한국적 낭만과 정서가 물씬하지만, 이 노래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민요 포 카레카레 아나를 번안한 곡이다. 6·25 때 참전한 뉴질랜드군 마오리 전사들이 전파했다. ‘케이포스로 명명된 뉴질랜드군은 연 3794명의 병사가 참전했고, 전쟁 후반부에는 4분의 1가량이 마오리족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마오리족은 물러서지 않는 용기로 유명하다. 두 차례 세계대전 당시 죽음을 마다않는 돌진으로 적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격투기팬 사이에서는 마오리족 레이 세포 선수가 팔을 내리고 상대 주먹을 막지 않는 노 가드 게임을 마크 헌트와 벌이며 전사의 심장을 과시한 일화도 유명하다.

 ​마오리족은 1769년 제임스 쿡 선장이 닻을 내리기 500년전부터 뉴질랜드에 터를 잡았다. 현재 뉴질랜드 인구의 60%가량은 현지에서 파케하라고 부르는 유럽계 백인이다. 마오리족은 15% 선이다. 원주민은 서구 이주민으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는 것이 세계사의 문법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백인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이미 1867년에 투표권을 획득했고, 마오리어는 영어와 함께 공용어다. 이런 마오리의 지위는 용기와 투쟁의 산물이다. 1845~187230년 가까이 벌어진 마오리 전쟁’(뉴질랜드 전쟁)에서 그들은 영국 정부에 처절하게 저항했다. 자존심 강한 마오리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영국은 평화공존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마오리의 문화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뉴질랜드는 원주민과 이주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례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히게 됐다.

 ​마오리는 오늘날 뉴질랜드의 문화와 정체성을 대표하고 있다. 전통춤 하카가 뉴질랜드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국가적 행사나 해외 귀빈을 환영할 때는 언제나 하카가 공연된다. ‘올 블랙스라 불리는 세계 최강 뉴질랜드 럭비대표팀도 경기 직전 하카를 춘다. 양쪽 다리를 벌리고 흰자위가 보일 정도로 눈을 부릅뜬 채 혀를 내미는 등의 의식으로 상대의 기를 죽인다.

 ​마오리족 혼혈인 폴라 베넷 의원(47)이 뉴질랜드 부총리에 올랐다. 전사의 피가 흘러서인지 그녀도 한 터프한다고 한다. 1030여명의 살벌한 싸움판을 혼자서 말려낸 일화가 회자된다. 베넷 부총리는 17살에 미혼모가 되기도 했다. 마오리의 용기를 수혈한 공존과 평화의 나라뉴질랜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