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총회에서 고별연설을 하고, 차기 총장인 안토니우 구테흐스 전 포르투갈 총리와 이·취임식을 했다. 임기가 이달 31일까지지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업무는 사실상 마무리된 것이다. 이제 남은 반 사무총장의 일정은 회원국들이 주재하는 환송 만찬과 유엔 출입 기자들과의 간담회 정도다.
이번 고별연설을 통해 반 총장은 자신을 ‘유엔의 아이(a Child of the UN)’로 규정했다. “6·25전쟁 이후 유엔의 지원으로 먹고, 유엔이 지원한 책으로 공부했다”면서 “유엔의 힘은 추상적이거나 학문적이지 않은 내 삶의 이야기”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유엔 원조금으로 연명하던 어린아이가 자라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오른 반 총장의 개인사는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변신한 대한민국 성공 스토리’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가 ‘세계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을 때, 많은 한국인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부정적 평가도 많다.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능력과 자질 때문이 아니라,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무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임기 중 핵확산이나 시리아 내전과 같은 중요한 이슈에서는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이었다고 혹평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은 ‘제3세계 노선’을 지지했던 ‘적극적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와 비교하면서, 반 총장은 강대국에 대해 독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강대국 출신은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없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아니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다는 것 자체가 강대국이 아니란 증거이기도 하다. 전임자 코피 아난 총장은 ‘제2의 다그 함마르셸드’를 추구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반대로 재선출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미국이 유엔 분담금을 대폭 축소하는 바람에 대대적 유엔 기구 ‘구조조정’을 단행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아들 코조 아난의 초대형 뇌물사건이 발생, 유엔 해체론까지 제기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사무총장은 사태를 수습할 조정자였는데 ‘뱀장어’ 반 총장이 이 역할을 대과(大過) 없이 무난히 소화해냈다는 긍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현재 반 총장이 유력 대통령 후보로서 또 다른 역할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아직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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