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이 없어 답답하게 구는 사람이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상황을 이르는 말.’ 고구마에 대한 온라인 국어사전 ‘우리말 샘’에 오른 풀이이다. 누리꾼 사이에서, 꽉 막힌 듯한 상황을 고구마 먹고 목이 메는 것에 비유하여 흔히 쓰는 표현이다. ‘고구마 연애’처럼 명사로만 쓰더니 요즘엔 ‘하다’를 붙여 ‘고구마하다’ ‘고구마했다’ 같이 동사로 사용하기도 한다. 국정이 하도 답답하니 ‘무정(감정이 없는 식물이나 무생물)’명사를 동사까지 파생시키는 시대다.
아메리카 열대 지역이 고향인 고구마는 1493년 콜럼버스 일행이 남미를 탐험하고 귀국하던 길에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유럽으로 가져간 이후 전 세계로 퍼졌다. 100년 뒤 유럽의 고구마는 필리핀을 거쳐 중국 푸젠(福建)에 상륙했고, 일본에는 그로부터 4년 뒤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를 거쳐 전래됐다.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170년쯤 늦게 고구마가 들어왔다. 조선 후기의 문신 조엄이 1763년 통신정사로 일본에 갔다가 오는 길에 쓰시마(對馬島)에서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고구마가 처음 아시아에 전해졌을 때 한·중·일 3국은 한자로 감저(甘藷)라고 표기했다. ‘달콤한 마’라는 뜻이다. 이후 중국에서는 간수(甘薯) 또는 훙수(紅薯), 바이수(白薯)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자가 들어오면서 비슷한 두 작물을 구별하기 위해 고구마는 남저(南藷), 감자는 북저(北藷)라고 했다. 그런데 재배 지역이 넓고 갈무리가 쉬운 감자가 널리 재배되면서 감저는 감자의 본명이 되고 말았다.
반면, 일본에서는 고구마를 이모(いも) 또는 사쓰마이모(さつまいも)라고 한다. 사쓰마(薩摩) 현에서 전해진 뿌리작물이란 뜻이다. 그런데 한반도 고구마의 본적지 쓰시마 지방에서는 일본 본토와 이름이 달랐다. 고시마(孝子麻), 즉 효자마(토란)라고 했다. 어느 주민이 심어 노부모를 봉양한 데서 유래했다 한다. 그것을 조선에서는 고귀위마(古貴爲麻)라고 한자로 표기했고, 오늘에는 고구마가 됐다. 결국, 고구마는 쓰시마 방언 ‘고시마’의 한자 외래어다.
요즘 정치인끼리 고구마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구황작물 고구마 얘기가 아니다. 누리꾼의 ‘고구마’를 빌린 표현이다. 고구마를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고 하니, 사이다와 같이 먹어야 시원하다고 하는 식이다. 참으로 ‘고구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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