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기

[칼럼 721]얼치기 원칙주의자들/박학용 논설위원/문화일보/2016.11.10

시온백향목 2016. 11. 25. 17:58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한 지 사흘이 지났건만 오만불손한 그를 향한 국민 분노는 여전하다. 검찰 출석 때 취재진을 내려다보는 동영상이 든 유튜브 조회가 30만 건을 돌파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조사실에서 팔짱 낀 우 전 수석과 그 앞에서 쩔쩔매는 검사의 모습이 잡힌 사진은 검찰을 질타하는 떼 댓글과 함께 황제 소환조어도 낳았다. 그의 안광(眼光)에 꽂힌 한 여기자 신상도 연관 검색어에 등장한다. 온 국민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흥미로운 건 문제의 포토라인 사진 장면을 표현한 동사가 언론마다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보는 10개 신문만 봐도 그렇다. 한 신문은 쏘아봤다’, 또 다른 신문은 째려봤다고 했다. ‘노려봤다’ ‘응시했다’ ‘직시했다고 한 신문들도 있었다. 어떤 매체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기자를 무시한 듯한 눈길로라는 수식어까지 보태 그의 안중무인(眼中無人)’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동원된 동사 중 그의 오만방자함을 가장 적확하게 묘사한 단어는 뭘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열어 이들 동사의 의미를 찾아봤다. ‘노려보다의 뜻은 미운 감정으로 어떤 대상을 매섭게 계속 바라보다이다. ‘응시하다눈길을 모아 한 곳을 똑바로 바라보다라는 의미다. ‘쏘아보다날카롭게 노려보다’, ‘째려보다못마땅해 매서운 눈초리로 흘겨보다이다. 결론컨대 그 상황을 처음 본 순간 기자의 느낌을 담은 적절한 단어 선택인 셈이다. 같은 동작을 설명하는 동사들이 이처럼 많다니 새삼 한글의 위대함도 느껴진다.


 우 전 수석의 지인들은 그를 까칠한 원칙주의자라고 평한다. 일을 맡기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독일 병정이라고도 부른다. “처가가 부자인 죄밖에 없다고 푸념도 한단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국민은 이미 그를 국민을 깔보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눈감아준 대역죄인으로 낙인찍었으니 말이다. 타인에겐 원칙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은 반칙을 일삼는 얼치기 원칙주의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성어가 있다. 채근담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같이,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는 말이다. 그런 참모를 역성든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는 아닐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