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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68년 여정을 되돌아보면 ‘국가의 원수’ 명문이 두 번 교차해왔다. 한 번은 의례적·형식적인 지위의 대통령에 그치게 하기 위해, 또 한 번은 가위 절대적인 대통령으로 거칠 것 없게 하기 위해.
제헌헌법 제51조는 ‘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이라고 했다. 1960년 4·19 이후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로 개정돼 헌정사에 ‘국·가·의∨원·수’ 다섯 음절을 처음 새겼다, 순수한 형태의 내각책임제 개헌으로 국무총리가 행정부 수반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는 의례적·형식적 권한만을 부여하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말이야 비단, 다들 ‘국민통합의 상징’ 운운했다.
이렇게 헌정사에 나타난 ‘국가의 원수’가 5·16 이후 1962년 제5차 개헌 때 사라졌다가 1972년 제7차 개헌, 일컬어 유신헌법 때 다시 나타났다. 그 시절의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국가원수 정도가 아니었다. 권력이란 권력은 한 손에 다 틀어쥔 ‘밀림의 제왕’이었다.
그렇게 자맥질한 ‘국가의 원수’가 이후 44년 변함없다. 더러는 그 점 여간 마뜩잖아하지 않는다. 누구 못잖게 헌정의 미래를 걱정해온 대화문화아카데미는 지난 8월 개헌안을 펴내면서 ‘원수’를 들어내고 ‘수반’을 들어앉혔다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그와 달리 현행 대통령제를 제왕적이라고 못마땅해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자들은 1960년 헌법의 ‘국가의 원수’를 못 잊는다. 또 비근한 예로 2014년 강창희 국회의장의 자문위원회가 정리한 개헌안은 현행 제66조 1항을 조문 위치만 이동시키면서 단 한 음절도 손대지 않았다.
‘국가의 원수’와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은 얄궂거나 짓궂다. 부친은 국가를 틀어쥐자마자 ‘국가의 원수’를 들어내는가 했더니 10년을 별러 국가를 더 틀어쥐기 위해 다시 집어넣었더랬는데 딸은 ‘국가의 원수’의 의미 그 자체의 탈색과 영락을 온몸으로 지켜보기에 이르렀다. 스스로 헌법질서를 흔든 박 대통령의 ‘국가의 원수’ 지위는 이제 의례로도 가물가물하다. 초혼(招魂)의 시간도 지나가고 있다, 백만 촛불의 강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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