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원조라고 자신하는 미국 조사기관들이 조종(弔鐘)을 울릴 처지다. 이를 보도한 언론들의 신뢰 추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뉴욕타임스, CNN,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들은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확률을 85%로 전망했고 일부 언론은 99%에 달한다고 예측한 곳도 있다. 그동안 족집게라고 명성이 나 있었던 기관들도 이번 선거에서는 체면을 구겼다. LA타임스·USC(서던캘리포니아대) 등 몇 군데만 도널드 트럼프의 우위를 예측했다. 이들은 같은 사람을 상대로 매번 조사했고 특히 투표 참여 여부를 계속 물어 투표율과 지지의 상관관계를 예측한 결과 트럼프의 우위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투표에서 힐러리의 지지층이 많은 여성·흑인·히스패닉의 결집도가 낮은 것을 잡아낸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과가 잘 잡히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를 ‘브래들리 효과’라고 하는데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흑인 후보 토머스 브래들리는 여론조사에서 앞서고도 백인 후보에게 졌는데, 백인 유권자 상당수가 인종편견을 숨기기 위해 여론조사에서는 거짓 답변을 했기 때문이다. 인도의 벤처기업 제니AI의 창립자인 산지브 라이는 이번 선거에 처음으로 인공지능 ‘모그AI’를 이용해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했다. 모그AI는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SNS에서 수집한 데이터 2000만 건의 양 후보 연관성을 분석해 트럼프의 당선을 정확히 맞힐 수 있었다. 3차례 TV 토론회에서 클린턴이 잘했다는 여론조사가 많았지만, 실제 SNS에서는 트럼프 우위로 나타난 것을 보면 이제 한 가지 방법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기존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근래 몇 년 전부터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우리나라 선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4·13 총선만 해도 국민의당의 약진, 새누리당의 참패를 맞힌 여론조사 결과는 하나도 없었다. 데이터를 맹신해온 탓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유권자들의 본심과 감성을 정치권이나 언론, 여론조사 기관들이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트럼프의 막말 발언을 도덕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지만, 기존 기득권 세력에 불만을 가진 이들에게는 ‘사이다’일 수도 있다. 진짜 민심을 읽어내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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