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과 아돌프 히틀러는 다른 사람이지만 운명은 비슷했다. 같은 1889년 4월생이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채플린은 첼로·바이올린 연주자, 히틀러는 화가를 각각 꿈꾸던 예술가 지망생이었다. 히틀러는 ‘채플린 흉내 내기 대회’에서 3등을 했다는 일화가 있으며, 채플린은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히틀러를 노골적으로 풍자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같은 미국 남부 출신에다 피살 장소(포드 극장, 포드 자동차), 피격 부위(후두)도 같고, 비서 이름도 엇갈린 케네디, 링컨이었다. 뒤를 이은 부통령도 같은 ‘존슨’이었다.
이처럼 다른 세상(시대)을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평행이론’이라고 한다.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박 대통령은 행정 규제에 대해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할 것”이라고 해왔다. 해외 순방 때도 기요틴(단두대)을 언급했다. 귀국한 최 씨를 접견한 이경재 변호사는 “최 씨가 단두대 앞에 서 있는 형국”이라고 했다. 최 씨 심경을 대변했을 것이다. 지난달 29일의 광화문 시위에서는 단두대(모형)가 실제 등장했다. 두 사람의 ‘단두대’는 놀랍게 닮아 있다. 평행이론을 연상케 한다.
“오늘로 (중략)‘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걸까. 박 대통령은 2012년 11월 25일 대선 전 ‘대통령직 사퇴’를 선언하는 실수를 했다. “제가 뭐라 그랬죠?” 겸연쩍게 웃으며 ‘국회의원직’으로 정정했지만 하야 요구까지 나오는 요즘 섬뜩한 주술적 느낌마저 든다. 실수가 아니라 운명을 예감한 ‘셀프 평행이론’ 아닐까.
이명박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때 청와대와 총리실 직원들이 대포폰을 사용했다. 비밀통화를 하고 청와대 하명이나 지시도 내려졌다. 꼭 6년 뒤. 검찰은 최 씨(10대)를 비롯,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4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3대)이 대포폰을 사용했음을 밝혀냈다. 수법도 같다. 박 대통령도 대포폰을 썼다는 보도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현 정부는 법을 개정해 대포폰을 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불법 대포폰을 사용해 불법 국정을 했으니 죄가 더 커졌다. 두 정권의 닮은 불법 대포폰 사용 패턴도 평행이론에 적용될 수 있을까.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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