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기

[칼럼 719]조동진 음악 50년/김종호 논설위원/문화일보/2016.11.08

시온백향목 2016. 11. 25. 17:55

                               

 “눈이 내립니다. 당신의 허무 위에도, 나의 무거운 어깨 위에도. 모든 시름이 사라져버릴 천사의 미소처럼 눈이 내립니다. 귓가에 손을 대고 가만히 들어보면,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는 당신이, 눈이 녹아 질퍽해진 거리를 미리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밤새껏 저토록 고르게 쌓인 눈을, 어느 성급한 이가 쓸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흔히 ‘포크 음악의 대부’ ‘한국을 대표하는 은둔형 음유시인’ 등으로 일컬어지는 싱어송라이터 조동진(69)이 1991년에 펴낸 시집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에 담은 시이면서 노래인 ‘흰 눈이 하얗게’에 대한 그의 소회다.


 그 노래의 한 대목은 이렇다. ‘한겨울 바닷가 거친 물결 속에/ 잊어진 뱃노래 외쳐서 부르다/ 얼어붙은 강물 위로 걸어서 오는/ 당신의 빈손을 가득 채워줄/ 흰 눈이 하얗게 흰 눈이 하얗게.’ 삶과 사회를 관조(觀照)하며 사유(思惟)하는 가사를 짓고, 서정적 멜로디를 붙여, 시를 읊조리듯 노래해 온 그의 대표곡 중 하나다. 또 다른 대표곡 ‘긴긴 다리 위에 저녁 해 걸릴 때면’을 만든 배경에 대해선 “시대적 아픔이나 사회적 괴리감에 고민하는 청춘이 득실거리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조국 근대화와 독재 타도의 틈바구니에서 슬쩍 비켜나온 나 같은 장발족에게도 젊음이란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1966년 주한 미 8군 록밴드의 기타리스트·작곡가로 음악 활동을 시작해, 1970년 ‘작은 배’로 가수 데뷔했던 그가 청춘의 가슴에 불을 지펴온 노래는 이 밖에도 많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하는 ‘제비꽃’을 비롯, ‘작은 배’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겨울비’ ‘저문 길을 걸으며’ ‘강의 노래’ 등을 나지막하고 묵직할 뿐 아니라 맑고 순수한 음성으로 불러 절규보다 더 강력하고 호소력 큰 파동이 가슴에 일렁이게 했다. 공식 1집 앨범을 1979년에 내놓고, 5집은 1996년에 발표했던 그가 20년 만의 새 앨범 ‘나무가 되어’를 오늘(8일) 공개하는 심정에 대해 “기타를 집어넣는 데 10년, 다시 꺼내는 데 10년 걸린 셈”이라고 밝혔다. 음악 활동 50년에 이른 그를 콘서트 무대에서도 더 오래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