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국가 아테네의 정치인 아리스테이데스에게 일자무식 시골뜨기가 도자기 조각을 건넸다. 상대가 누군지 몰랐던 시골뜨기는 그 조각에 아리스테이데스라고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그자한테 무슨 해코지를 당했기에 그러느냐”고 물었다. 시골뜨기는 “아무 사이도 아니오. 모두 정의롭다, 정의롭다 하니 지겨워서 그렇지”라고 대꾸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도편추방제 일화의 한 토막이다.
도편추방제는 독재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선제적으로 가려내 쫓아내는 훌륭한 제도였다. 이름이 적힌 조각이 6000개를 넘으면 추방 대상자로 지목됐다. 별명이 ‘공정한 사람’이었던 아리스테이데스는 시골뜨기에게 자기 이름을 적어주고는 결국 쫓겨났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정치적 맞수인 테미스토클레스가 있었다고 한다. 도편추방제는 정적을 제거하고 중우(衆愚)정치가 판치게 하는 수단으로 점차 전락했다.
그제 촛불집회에는 유례없는 인파가 몰렸다. 5호선 광화문역 밖으로 나오는 데만 30분이 걸릴 정도였다. 인파에 떠밀려가다 “이재명 성남시장, 대통령 후보자입니다”라는 외침에 돌아보니 이 시장이 시민과 어울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1년 4개월이나 나라를 이끌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목청 높여 연설하고 있었다. 인디밴드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노래와 상여를 앞세운 농민들의 “근∼혜∼퇴∼진∼” 곡(哭)소리가 엇갈렸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구호는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1688년 명예혁명은 네덜란드 오라녀 공 빌럼이 영국 의회와 손잡고 제임스 2세를 몰아낸 무혈혁명이었다. 그 결과 제임스 2세의 딸은 메리 2세로, 사위인 빌럼은 윌리엄 3세로 공동 즉위했다. 왕 1명의 빈자리를 ‘1+1’ 여왕과 왕이 차지했다. 하지만 왕의 권력은 의회가 주도한 입헌군주제 안에 갇히게 됐다. 야 3당은 그제 사상 최대 촛불집회의 민심에 함께 올라탔다. 호랑이 같은 민심에 떠밀리지 않고 더 나은 정치로 이끌어갈 지도자가 그 속에 있는지 미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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