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가 많았던 흥행 대결은 서울 국도극장과 명보극장에서 각각 1961년 1월 18일과 28일 개봉된 ‘춘향전’과 ‘성춘향’의 승부였다고 할 수 있다. 두 명장(名匠) 감독이 한국 최고의 배우들을 동원한, 동일 고전의 동시 영화화였기 때문이다. 개봉은 10일 늦었으나 촬영을 먼저 시작했던 ‘성춘향’의 신상옥(1926∼2006) 감독은 ‘내용 3분의 1이 같을 경우엔 제작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내규를 들어, 홍성기(1928∼2001) 감독의 ‘춘향전’ 제작 제재 요구 진정서를 내기도 했었다. 협회 총회에선 지지·반대에 따라 신·구파로 갈렸다.
그 대결의 중심엔 ‘동양 최고의 미인’이란 찬사를 공유하던 스타 여배우들도 있었다. 신 감독의 아내로 ‘성춘향’ 여주인공 역을 맡은 최은희(90)는 당시 35세여서 ‘이팔청춘’ 배역엔 걸맞지 않을 법도 했지만, ‘한국 여인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미모’에 세련된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홍 감독의 부인이던 ‘춘향전’의 여주인공 김지미(76)는 당시 21세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릴 만큼 청순함과 화사함을 겸비한 미모에 ‘20세기에 다시 살아난 춘향’을 실감 나게 재현했다는 극찬까지 받았다. 흥행 성적은 2개월 동안 서울에서만 36만1000여 명이 본 ‘성춘향’의 완승이었다. 그 관객 수는 그 시점에선 국내 상영 외국 영화까지 통틀어 역대 최다였다. 그 기록은 1968년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 관객이 36만2000여 명에 이르기까지 7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그 대결에서 밀린 홍 감독은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걸으며 1962년엔 김지미와도 이혼한 반면, 신 감독은 승승장구했다.
이는 최은희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밝았던 시기의 한 자락이다. 그가 김정일 지시를 받은 북한 공작원에 의해 1978년 납북됐다가, 뒤이어 납북된 신 감독과 함께 8년 만인 1986년에 오스트리아를 거쳐 탈출한 지 올해로 30년이다. 영국의 로버트 캐넌 감독과 로스 애덤 감독이 그 전말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가 지난 1월 제32회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선보인 데 이어, 오는 22일 국내 개봉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자신의 삶을 두고 “한바탕 길고 긴 꿈을 꾼 것 같다”고 토로하는 그의 생애 중 눈물겨운 한 자락이 관객의 가슴을 또 흔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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