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우리 국민에게 아주 익숙한 이 용어는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의미다. 지난해 한 종편 프로에 출연한 한 외국인이 “프랑스어 권에 있는 말이긴 한데 잘 쓰이지는 않는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단어를 접하면 로댕의 ‘6인의 칼레의 부르주아’ 조각상이 떠오른다. 14세기 백년전쟁 때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오랜 전투 끝에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를 점령했다. 그리고 칼레시에 ‘시민 6인 처형’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시민은 동요했다. 이때 맨 먼저 처형받겠다고 나선 사람이 칼레의 최대 거부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였다. 이어 귀족, 시장, 법률가 등도 동참했다. 이에 감동한 에드워드 3세는 그들 모두를 살려줬다.
요즘 이 단어가 신문 지상에 부쩍 자주 등장한다. 대개 이의 부재를 질타하는 부정적 의미다. 대기업 오너, 공직자, 정치인, 언론인 등 상당수 지도층의 ‘막장 드라마’가 거의 매일 방영되다시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검사·변호사도 모자라 ‘사법정의 수호의 최후 보루’인 현직 부장판사까지 본인 재판과 관련해 청탁과 함께 뒷돈을 챙긴 ‘사건’은 클라이맥스다. 드물지만 긍정적으로도 차용된다. 과학재단 설립을 위해 사재(私財) 3000억 원을 출연하고, 앞으로 그 규모를 1조 원 가까이 늘리겠다고 선언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그런 경우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징병제의 모병제 전환을 주창하면서 이 용어를 갖다 붙여 구설에 휘말리고 있다. 그는 “부모 재산이 많은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따라 더 많은 사회 공헌을 하는 제도를 만들면 군을 강하고 튼튼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지도층과 자제들이 군 복무만 면하게 해주면 이들의 ‘보은(報恩)기부’로 강군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논리로 들린다. 이 용어의 원뜻으로 돌아가면 귀족 의무의 핵심은 병역인데, 모병제를 운운하면서 이를 원용한 건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특혜와 책임’이라는 책을 펴낸 원로 사회학자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발전의 동력은 고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사회 중심부에 위치하며 권력을 지닌 ‘위세(威勢) 고위층’이 이를 회복하지 못하면 국가 재앙이 온다”고 했다. 특권만 누리고 책무는 저버리는 대한민국 지도층이 깊이 새기고 맹성해야 할 대목이다.
'칼럼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676]영화배우 최은희/김종호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13 (0) | 2016.10.06 |
---|---|
[칼럼 675]노트텔/황성준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12 (0) | 2016.10.04 |
[칼럼 673]‘스폰서’의 법칙 /이현종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08 (0) | 2016.09.25 |
[칼럼 672]今昔-이석수 特監/홍정기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07 (0) | 2016.09.24 |
[칼럼 671]北의 금지곡 ’아침이슬‘/한기흥 논설위원/동아일보/2016.09.05 (0) | 201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