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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673]‘스폰서’의 법칙 /이현종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08

시온백향목 2016. 9. 25. 14:38

 스폰서 검사, 스폰서 판사, 스폰서 연예인, 스폰서 프로선수, 스폰서 정치인. 남을 돕는 후원자라는 뜻의 스폰서(sponsor)’가 한국에선 부패의 상징적인 단어로 변질됐다. 권력을 가졌거나 이름난 사람이 든든한 스폰서 하나 없으면 소위 잘나가는 그룹에 끼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법조계의 스폰서 문화는 뿌리가 깊다. 판검사의 월급으로 품위를 유지하기가 빠듯하다 보니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지금은 서울서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자신이 지방에 근무할 때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부임해 내려간 다음 날 지역유지와 사업자들이 마련한 축하연에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처음부터 코가 꿰일 수 있으니 가급적 거리를 두라는 선배 검사들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얼마 후 서울의 한 선배 검사로부터 혹시 바람을 피우느냐는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자신을 음해하는 소문을 누군가 퍼뜨리고 있다는 감이 들었다고 한다. 넥슨의 김정주 회장으로부터 수백억 원의 주식과 향응 등 스폰서를 받은 진경준 전 검사장이나, 2009년 사업가로부터 강남 아파트 구매대금 등을 제공받은 의혹에 휩싸여 낙마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처럼 대 스폰서도 있지만, 회식비 등의 명목으로 지원하는 소 스폰서도 있다. 최근 김모 부장검사 사례를 보면 스폰서가 술집, 여자 등 사생활까지 다 책임지는 걸어 다니는 지갑역할도 한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공범처럼 코가 꿰이게 되기 때문에 법조 브로커들의 타깃이 된다


 정치인들도 정치자금법이 엄격해지면서 스폰서가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예전과 같이 대기업보다는 친구 사업가나 친인척들이 공식 후원금 이외에 물밑에서 알음알음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출판기념회가 사실상 금지되면서 국회의원들이 사용처가 규정된 공식 후원금 이외에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이 없어 돈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씀씀이가 줄고 핑계를 댈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스폰서는 처음엔 대가성이 전혀 없는 순수한 지원이라는 것을 각인시킨 뒤 액수를 조금씩 높여가면서 죄책감도 없애고 중독이 되게 한다. 그때부터는 갑을관계가 바뀌어 스폰서가 청탁을 하면 안 들어 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것이 스폰서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