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의 첫 소절만 들어도 마음이 울렁거린다. 일상에서 흐트러진 자세를 다잡고 뭔가 대의(大義)를 위해 결연히 일어서야 할 것 같은…. 가사 때문일까, 멜로디 때문일까. 1970년대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아침이슬’은 자유와 민주를 염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한데 묶은 노래였다. 억압과 금지에 짓눌린 시대에 “긴 밤 지새우고∼”를 때론 목청껏, 때론 처연히 부르노라면 더 나은 내일이 앞당겨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낭만적 저항의 노래 가사 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가 문제가 됐다. 김민기는 밤새워 술을 마시고 서울 돈암동 야산 공동묘지에서 깨어났을 때 풀잎에 맺힌 이슬 위로 해가 떠오른 것을 보고 이 곡을 만들었단다. 엄혹한 시대에 기껏 통음으로 저항했던 청년의 자기 성찰인데도 음험한 상상력이 뛰어난 공안 당국은 불순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봤다. 유신정권은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면서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1971년엔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던 노래인데….
역설적이게도 ‘아침이슬’은 북한에서도 널리 불렸다. 북 당국이 남한 시민들의 투쟁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만든 선전 영상물에 등장했다. 하지만 따라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북 당국은 주민들이 노래에 담긴 저항의식에 눈뜰 가능성에 비로소 주목했고 1998년부터 못 부르게 금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북 당국이 모두 주민들이 상대에게 물들까 봐 두려워 금지시켰으니 참 기구한 노래다.
1987년 9월 5일 방송심의위원회가 방송금지가요 500곡을 해제하면서 ‘아침이슬’도 ‘동백아가씨’ 등과 함께 다시 전파를 타게 됐다. 김일성대 출신 본보 주성하 기자는 북에서 친구들과 ‘아침이슬’을 부른 추억을 다룬 글에서 이 곡에 사로잡힌 이유에 대해 “노래 속에 감춰져 있는 항거의 정신이 우리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내재적인 반항의식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까”라고 쓴 바 있다. 북에서 ‘아침이슬’을 몰래 부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요즘엔 부쩍 늘었다고 한다.
'칼럼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673]‘스폰서’의 법칙 /이현종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08 (0) | 2016.09.25 |
---|---|
[칼럼 672]今昔-이석수 特監/홍정기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07 (0) | 2016.09.24 |
[칼럼 670]‘노블레스 오블리주’ 서경배 과학재단/권순활 논설위원/동아일보/2016.09.03 (0) | 2016.09.22 |
[칼럼 659]정치언어의 품격/이진 논설위원/동아일보/2016.09.02 (0) | 2016.09.21 |
[칼럼 658]나비와 나방/황성규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9.06 (0) | 2016.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