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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630]‘노예국가’의 함의/황성준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7.21

시온백향목 2016. 8. 17. 18:58

 영국은 1718세기 노예무역을 통해 거대한 부를 창출했다. 영국-서아프리카-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노예 삼각무역이 당시 영국 국민총생산의 50%가량을 차지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노예 산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현실주의 시각에서 자살행위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윌리엄 윌버포스를 중심으로 노예폐지운동이 전개돼 1807년 노예금지법이 통과됐다. 그 후 영국 해군은 1860년까지 노예무역선을 해적선과 동일하게 취급해 약 1600척의 노예선을 나포 혹은 격침했다


 많은 서아프리카 원주민 왕국들이 반발했다. 라고스 왕국(현 나이지리아)은 전쟁도 불사했다. 이들 노예국가는 원주민을 노예로 사냥, 럼주·총포·의류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인이 직접 흑인 노예를 사냥하는 일은 실제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았는데, 노예국가가 대행하는 편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일부 노예국가는 노예폐지 반대투쟁을 민족해방투쟁으로 미화하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영국은 막대한 국부를 포기하면서, 미국은 남북전쟁에서 100만 명 넘는 사상자를 내면서 노예제를 폐지했다. 모든 단어가 그렇듯 영미권의 노예국가는 이런 역사적·문화적 함의를 담고 있다


 미국 공화당이 북한을 김씨(金氏) 일가의 노예국가로 규정한 정강(政綱)18일 전당대회에서 채택했다. 한때 북한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바랄 것이란 분석이 나온 적도 있다. 아시아 중심(pivot to Asia) 정책을 추구하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달리, 신고립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트럼프가 김정은과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 김정은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화당 정강의 대북 노선은 민주당보다 강경하다. “한반도의 긍정적 변화(positive change)를 서둘러야 한다는 대목은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연상시킨다


 트럼프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일단 김정은과 담판을 시도할지 모른다. 그리고 협상이 실패하면 사드(THAAD), 주한미군도 철수하고 북폭(北爆)을 단행할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행태와 노예국가의 역사성이 합쳐지면 우리의 셈법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