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외신 기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코미디언이 일반 배우보다 평균 3년 일찍 사망한다는 외국 연구진의 분석이었다. 호주 가톨릭대 사이먼 스튜어트 박사는 국제학술지 ‘심장병학 저널’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국내외 코미디언·배우 384명을 추려 그중 사망한 사람의 나이를 조사한 결과 직접 무대에 서는 스탠드업(stand-up) 코미디언의 평균수명은 67.1세로, 영화나 TV에 나오는 배우(70.7세)보다 3년가량 짧았다”고 밝혔다. 인기 많은 코미디언일수록 스트레스를 더 받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다고도 했다. 그는 “열악한 작업 여건과 남을 웃겨야 하는 스트레스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외신을 접할 즈음 한 언론에 나온 구순의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씨의 인터뷰가 오버랩됐다. 그는 4년 전 ‘사망설’이 나돈 이후 이를 해명하느라 공개 석상에 간간이 등장했었지만 최근에는 뜸한 터였다. 답변 일부만 소개한다. “8년 전 뇌수술을 해 휠체어를 타고 있어. 콩팥도 안 좋아 일주일에 3번 투석하러 병원에 다니고. 정신만 멀쩡하지 딴 덴 다 바보야 .” “코미디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앞과 뒤를 가져다가 풀어헤쳐 놓은 것이야. 풍자인 셈이지. 요즘 개그는 말장난이 너무 많아. 후배들이 돈 많이 주는 데만 쫓아다니지 말았으면 해. 매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지.”
한국 코미디계의 전설인 그도 무대에 서면 늘 가슴이 울렁거렸다고 한다. 어떻게든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이다. 객석을 둘러보고 분위기를 살핀 다음 안 웃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웃을 때까지 오기로 연기를 계속 했다고도 했다. 얼마 전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중견 코미디언도 같은 유의 고충을 털어놨다. “공연 중 웃음이 터지면 엔도르핀이 팍팍 도는데 반응이 싸늘하면 죽고 싶을 정도의 자괴감을 느낀다.”
‘웃음은 유통기한도, 부작용도 없는 만병통치약이다.’ ‘당신이 웃고 있는 한 위궤양은 악화하지 않는다.’ ‘건강은 웃음 양에 달려 있다.’ 웃음의 힘을 알리는 명언들이다. 그런 웃음을 만들어내야 하는 코미디언이 ‘웃지 못할’ 스트레스로 수명이 단축되고 있다니 딱한 일이다. 사는 게 팍팍해 웃는 것조차 버겁지만 내 건강은 물론 우리나라 희극인들의 장수를 위해서라도 이제 많이 많이 웃어야겠다.
'칼럼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631]김향안 탄생 100주년/김종호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7.22 (0) | 2016.08.18 |
---|---|
[칼럼 630]‘노예국가’의 함의/황성준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7.21 (0) | 2016.08.17 |
[칼럼 628]김영란법 汚名/홍정기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7.18 (0) | 2016.08.15 |
[칼럼 627]메타포 不在정치/최영범 논설위원/문화일보/2016.07.12 (0) | 2016.08.14 |
[칼럼 626]위안부 재단 출범일의 ‘테러’/권순활 논설위원/동아일보/2016.07.29 (0) | 2016.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