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무슨 같잖은 소리냐고 타박 맞을 일이다,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부정(不正)’이야 있든 없든 무방하다고 말한다면.
하지만 어쩌랴, 김영란법이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 지경 돼버린 것을.
김영란법의 본명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좀 길다. 그래서 줄여 부르는 이름도 여럿이다. ‘부정청탁·금품 수수 금지법’, 더 줄여 ‘부정청탁금지법’으로 줄이는 예가 많다. 그런데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가 붙인 약칭은 ‘청탁금지법’이다. 농협 품목별전국협의회도 12일 ‘청탁금지법 금품대상 농·축산물 제외 요청 50만 농업인 서명부’를 국회에 제출했다. ‘부정청탁금지법’에서 ‘부정’ 두 음절을 아예 지우고 ‘청탁금지법’이라 해도 괜찮은 것인가.
‘청탁금지법’이라면 부정한 청탁이든 안 그런 청탁이든 모두 금한다는 법이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본명은 물론 제2장과 거기 제5조 표제에서도 모든 청탁 아니라 ‘부정 청탁’을 금한다.
‘청탁금지법’은 국가법령정보센터가 잘못 붙인 약칭 차원을 지나 위헌 작명의 혐의까지 짚인다. 헌법 제26조는 국가기관에 청원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 청원과 부정하지 않은 청탁을 구별할 순 없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의 이 같은 위헌 혐의 약칭은 입법 연혁 5년의 뒤안길, 굽이굽이 흐를수록 원래의 정명(正名)이 흔들리더니 기어이 위헌 혐의 짙어지게 한 오명(汚名)의 뒤안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5년 전인 2011년 6월 14일,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제안한 첫 이름, 그러니까 태명(胎名)은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私益) 추구 금지법’이었다. 이듬해 8월 22일 입법예고한 첫 정식 이름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한 해 더 지나 2013년 8월 5일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도 바로 그 이름이었더랬다. 그러다가 지난 제19대 국회 정무위가 지금 저 이름으로 뜯어고쳤다…아니, 이름뿐 아니라 ‘공직자 등’ 운운해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사 임직원을 포함시키더니 자기네들 국회의원은 선출직 핑계로 다 빠져나갔다.
법 시행일 9월 28일까지 71일…, 헌법재판소의 위헌소원 선고기일 그날까진 며칠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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