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2

시온백향목 2017. 7. 29. 23:49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


 

프랑스여행(베르사유 궁전)



파리까지 왔는데, 베르사유 궁전을 안 보면, 마치 외국인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남대문이나 경복궁도 안 돌아 보고 가는 격이 아닌가. 베르사유 궁전이라고 하니, 루이 14세가 떠오르고 그 다음 절대 권력 태양왕의 이미지며 "짐이 곧 국가다"라고 했다는 말이다. 얼마나 호화장대한 것을 좋아했던지 루이 14세는 1677년에 자신의 주거지를 전설적인 궁정 베르사유에 정했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가량 떨어진 베르사유 시에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건설한 궁전이 있다. 바로크 건축의 걸작으로, 이 거대한 건축물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한다. 건설에는 무려 25,000~36,000명의 인부가 매년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궁내에 들어서니 궁전 건물의 면적보다 정원이 더 넓다. 별궁으로 대 트리아농 궁과 소 트리아농 궁이 있는데,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 16세와 왕실 가족들이 거주했다는 거다.


베르사유 궁전은 당대의 랜드마크이었다. 거대한 건축물로 왕의 부(富)를 과시하고 권위를 높이는 한편, 귀족들을 베르사유에 집합시켜서 왕 앞에 줄서기를 강요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루이 14세는 자신의 업적을 널리 선전하기 위해서 민간인의 베르사유 출입을 크게 통제하지 않았다. 심지어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둘러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가이드북을 루이 14세가 친히 제작을 지시할 정도로, 민간인의 베르사유 관람을 허가하면서 왕의 권력과 위세를 과시한 셈이다. 

그러고 보니 400여년전 프랑스 영광이, 이 영광이라는 것도, 루이 14세가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민중의 피와 땀과 눈물이 이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됐구나. 비장했던 역사와 스마트폰이라는 현대문명의 이기가 공존하는 베르사유 궁전의 생동하는 현장감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긴다.

 


 

 나폴레옹의 개선문 

 

 개선문 앞에서 잠시 쉬고



 

 파리 시내 

 하늘에서 본 베르사유 궁전(사진은 나무 위키에서)



 


 

 베르사유 궁전 입구

 

 궁내 넓은 광장​


 왕실 성당
 

 

 여기는 거울의 방인데, 전쟁의 방, 평화의 방이 따로 있다. 전쟁의 방이라면 혹시 핵탄두가!?


 


 

 



 

 

 

 

 

  




<시>


바다의 미풍

                                                   스테판 말라르메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달아나리! 저곳으로 달아나리!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서
새들 도취하여 있음을 내 느끼겠구나!
어느 것도, 눈에 비치는 낡은 정원도,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 붙잡을 수 없으리,
오, 밤이여! 백색이 지키는 빈 종이 위
내 등잔의 황량한 불빛도,
제 아이를 젖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리라! 그대 돛대를 흔드는 기선이여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한 권태 있어, 잔인한 희망에 시달리고도,
손수건들의 마지막 이별을 아직 믿는구나!
그리고, 필경, 돛대들은, 폭풍우를 불러들이니,
바람이 난파에 넘어뜨리는 그런 돛대들인가
종적을 잃고, 돛대도 없이, 돛대도 없이, 풍요로운 섬도 없이……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 저 수부들의 노래를 들어라!

(번역: 황현산)

●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 ; 1842년 ~ 1898년)는 프랑스의 시인이다.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와 더불어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단을 주도했다. 시집 『에로디아드』『목신의 오후』『시집』『주사위를 한 번 던짐』 등, 미완성 소설 『이지튀르』, 산문시와 평론을 묶은 『디바가시옹』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