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동경한다면 반드시 떠나주는 게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다. 그 곳에 삶의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떠날 수 있는 이유보다 포기해야 할 이유가 더 많게 마련이다. 그래서 여행은 ‘밀어붙이는 힘’이 필요하다. 혼자 안되면 둘, 셋이 함께라도 힘을 모으면 된다.
여기 세 사람의 현직 교사가 함께 다녀온 유럽여행기를 소개한다. 그들의 동선에 들어있는 <붉은색 꿀팁>만으로도 여행을 떠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다.
01 투합 위 사진 속 세 사람의 이름은 왼쪽부터 박선영, OOO(본인 의사에 의함), 신선애이다. 우리는 부천 범박고등학교 동료 교사로 근무 중이다. 신선애는 중국어, 박선영은 영어를 가르친다. 직업이 교사라고 하면 ‘방학’이 있다는 이유로 모두들 부러워 한다. 방학이라고 학생과 교사가 모두 내내 쉬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니 늘 고맙고 송구한 마음이다. 또한 이왕 맞게되는 방학을 꿀맛으로 보낼 방법도 궁리하곤 한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여행을 좋아하고 꿈꾸고 있다는 점, 그리도 같은 학교 교사라는 점, 게다가 나이도 모두 서른 다섯에 미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당연히 친하다. 세 사람은 겨울 방학을 ‘장기 여행 기회’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날, 각자 친구들과의 일정을 만들고 있었으나 시간과 일정과 취향이 달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털어놓게 되었다. 결국, ‘그렇다면 우리가 뭉치자!’며 의기투합했다. 격하게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02 꼼꼼 두려움도 있었다. 1박2일 여행은 많이 다녀봤지만 한달 가까운 25박26일, 그것도 유럽 여행은 처음 아닌가. 우리가 시행착오를 즐길 나이도 아니고(!) 모험가 또한 아니니 꼼꼼한 준비만이 여행을 100%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첫째 동선을 함께 결정했다. 둘째, 나라별 책임 담당제에 합의했다. 자기가 맡은 나라는 자기가 조사하고 예약하고 가이드까지 하는 방식이다. 학기말에 처리해야 할 학교 업무가 많았기 때문에 생각한 건데, 이게 생각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가이드는 물론 교통, 숙박 예약까지 국가 담당자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여행 정보는 가이드북, 인터넷, 관광청사이트 등 모든 미디어를 통해 닥치는대로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그 과정에서 ‘스투비 플래너(Stubby Planner)’라는 웹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여행 희망 도시들을 입력하면 교통 수단, 소요 시간, 가격까지 제시해 주는 스마트한 프로그램, 아니, 가뭄에 단비였다. 스투피 플래너는 우리의 동선도 정리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최종 결정된 루트가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다시 프랑스>다. 아, 비용은 일인 당 500만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아예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물론 그 돈은 ‘언젠간 떠나게 될 여행을 위해 틈틈이 모은 결과물’이다.
03 예약 유럽행 항공권은 보통 6개월에서 3개월 정도 전에 예약을 해야 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완전 저렴 티켓은 포기했지만 끝까지 최저가 티켓 확보를 위한 구슬땀을 아끼지 않았다.
스카이 스캐너(Sky Scanner)를 집요하게 검색한 결과 80만 원대의 중국 항공사와 120~130만 원대의 유럽 항공사로 압축되었다. 돈만 생각하면 당연히 중국 항공사를 선택해야 했지만 리뷰 키워드에 ‘서비스 질’과 ‘수화물 사고’, ‘오버 부킹’ 등 부정적인 내용들이 떠 있어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돈과 위험 사이에서 갈등하던 우리는 때마침 뜬 아시아나항공의 100만원 선 대의 항공권을 잡았다. 국적기라 편하고 가격도 좋았지만 오로지 파리로 들어갔다 파리에서 나와야 하는 변경 불가 항공권이라는 제한이 있었다. 유럽 여행의 필수 티켓인 유레일패스를 검색할 때는 우리가 30대 중반 ‘고령의 나이 ㅠㅠ’라는 점 때문에 비싼 티켓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현실에 좌절했다. 결국 ‘어차피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100만원도 넘는 35세용 패스를 끊느니 기차나 버스는 별도로 예약을 하고, 동선이 긴 경우는 유럽 내 저가 항공을 이용하는 것으로 결론 지었다.
파리-마드리드, 마드리드-포르토, 그라나다-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로마, 밀라노-파리를 저가 항공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가격은 최저 약 5만원에서 최고 14만원으로 예약이 가능했다. 포르투갈 포르토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동하는 야간버스와 이탈리아 내에서의 기차도 예약했다. 숙소 예약은 호스텔월드, 호텔스닷컴 등을 이용, 호텔과 호스텔을 섞어서 예약했다. 예약의 기본 조건은 안전과 현지 이동이 편한 위치였다. 이렇게 예약을 마치고 우리는 소녀시대 감성으로 배낭을 꾸렸다.
04 파리 오후 늦게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다. 무엇을 느낄 새 없이 우리는 거침없이 파리 시내행 국철에 몸을 실었다. 환승역에서 메트로로 갈아타고 숙소 근처 역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모두들 바짝 긴장! 이윽고 내려야 할 역에 기차가 도착했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급당황해서 머뭇거리자 플랫폼에 있던 사람들이 ‘아, 놔, 왜 안눌러?’라는 표정으로 밖에 달린 버튼을 눌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런, 이런, 이거 다 가이드북에서 본 내용인데, 우리가 몹시 당황했지 말입니다! 크크크. 유럽의 지하철은 승객이 직접 버튼을 누르거나 문고리를 돌려야 열리는 방식이다. 그때 승차자가 없었다면 우리는 다음 역에서 내려야 했을 것이다.
메트로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고풍스러운 거리는 퇴근길 시민으로 가득했다. 주소만 갖고 숙소를 찾아 가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친절한 파리지엥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메트로 노선도를 보고 있거나 지도를 들고 방향을 정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누군가 다가와 도와주었다. 심지어 자신의 휴대폰으로 구글맵을 검색해 가르쳐주기도 했다. 파리에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은 왜 나온거지? 아니면 우리의 뛰어난 미모가 친절을 불렀나? 레알? 호호호.
파리에서의 교통편은 오로지 메트로만 이용했다. 우리의 숙소가 루브르박물관, 샹제리제 거리 등 도심과 가까워 1~2회 환승만으로 어지간한 곳은 다 갈 수 있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난 우리는 루브르박물관에 일등으로 도착, 파리의 국민 빵집 ‘폴(Faul)’에서 사온 빵과 커피를 마시며 개관을 기다렸다. 점심 시간이 지나면 관람객이 오전보다 배로 늘어나므로 일찍 가는 것이 한산한 관람에 도움이 된다. 루브르박물관은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곳 중에 하나로 꼽힐 만큼 감동적인 곳이었고, 멋진 작품들을 원 없이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한마디로 명화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느낌이었다.
파리 일정 중 우리는 세 번이나 에펠탑을 관람했다. 뻔한 관광지라고?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빛깔과 분위기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었다. 특히 낮과 밤에 만나는 에펠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대낮의 에펠이 도도한 파리지엥이라면 한밤의 그것은 황홀한 여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왼쪽)프라도미술관©크레딧by위키미디어커먼스
05 마드리드 저가 항공사인 부엘링 항공편으로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첫 번째 장소는 솔 광장이었다. 스페인에는 광장이 많다는 걸 책에서 본 터라 드넓은 광장을 상상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우리나라의 명동거리 정도의 규모였다. 숙소는 솔 광장을 지나 조금 걸어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마요르 광장 부근에 있는 호스텔이었는데 근처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작은 바들이 즐비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끌벅적한 거리와 성격 급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거리에는 남은 주말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그리 큰 규모의 도시는 아니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들은 특별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모두 다닐 수 있었다. 물론 버스를 이용해도 좋다.
마드리드 솔광장©크레딧by위키미디어커먼스
마드리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에스파냐 왕의 공식 거처이자 왕실의 상징인 마드리드 왕궁과 엘 그레코, 고야, 벨라스케스 등의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프라도 미술관이다.
왕궁은 에스파냐 왕의 공식 거처인 곳이나 공식 행사에만 사용되고 실제로는 왕가가 거주하지 않는다고 한다. 총 3800여 개의 방 중 일반인에게는 50개 정도의 방만을 개방하는데, 도자기로 장식된 방, 화려한 연회가 열리는 대형 식당, 중국 양식으로 꾸며진 가스파리니 방 등 화려한 궁전에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왕궁 안 무기 박물관에서 본 스페인의 갑옷과 무기, 일본 사무라이 갑옷도 인상적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고야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시기별로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초기에는 부드럽고 낭만적인 붓 터치가 돋보이는 귀족적인 그림을 그렸다면, 말년으로 갈수록 섬뜩할 정도로 어두운 화법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고야의 작품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은 그림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먹었다. 다른 화가들도 같은 신화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지만 고야의 그림은 끔찍하고 처절한 고통이 담겨져 있었다. 그의 작품 세계가 급변하게 된 것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중병을 앓아 청력이 소실된 개인적인 이유와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아 잔인하게 탄압 받고 있었던 스페인의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어두운 내면과 혼란스럽고 잔혹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점점 더 어둡고 우울해져 간 것이다.
고야의 작품 외에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엘 그레코와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루벤스의 <세 여신> 등 놓쳐서는 안 될 명화들로 가득한 프라도 미술관은 마드리드에서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곳이다.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일은 포루투갈행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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