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카소’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와 ‘그래픽 디자인을 순수 미술로 끌어올린 천재’ 키스 해링(1958∼1990)은 미술과 낙서의 경계를 허문 ‘낙서 화가’다. 지저분하기로 악명 높던 미국 뉴욕 지하철의 벽 등에 속도감 있는 필치로 낙서처럼 그린 문자와 단순한 형상들은 세상을 향한 강렬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둘 다 미술계의 이단아(異端兒)로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다 요절했으나, 캔버스뿐 아니라 다양한 바탕 위에 간결하고 힘찬 선(線)과 두세 가지 원색으로 인간의 본질과 사회 현실에 대한 성찰을 도발적으로 묘사한 걸작들의 감동은 시공을 뛰어넘는다.
‘한국화의 자유혼(魂)’으로 불리며 “예술은 무법(無法)”이라는 자신의 말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황창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소정(素丁) 황창배(1947∼2001) 화백을 두고 바스키아와 해링을 떠올린다는 미술 평론가가 드물지 않다. 문인화·서예·전각·민화·한문학(漢文學) 등에 두루 걸출하면서, 서양화 물감으로 낙서처럼 거칠고 단순하게 표현한 그림을 통해 한국 채색화에 반란을 일으킨 그를 ‘한국 화단의 혁명가’ ‘한국화의 테러리스트’ ‘현대 회화의 전위(前衛)’ 등으로 일컫는 것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김종근 교수는 “파격과 일탈의 황 화백이 피카소 같은 천재가 남길 법한 명언을 많이 남겼다”면서 “재료도 수묵과 종이는 기본이고 캔버스나 마대 위에 아크릴·파스텔·흑연 등을 가리지 않고 두툼하게 바르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무제 ― 곡고댁(哭高宅)’이 인본(人本)을 가볍게 여기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로 읽히는 이유도 달리 있지 않다. 검정 바탕에 억세고 힘이 넘치는 닭 한 마리가 의기양양하게 날갯짓하는 모습을 그린 한쪽에 한자(漢字)로 ‘곡고댁’을, 다른 한쪽엔 한글로 ‘꼬꼬댁’을 써넣었다. 화가이면서 미술학 박사인 기라영이 ‘고택에 살면서 앙칼지게 닭 울음소리를 내는 천박한 부잣집 마나님의 허영심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하는 그림이다.
그의 타계 16주기를 맞아 유족과 미술계 인사들의 뜻을 모아 서울 연희동의 황 화백 옛집을 리모델링한 전시장 겸 복합 문화 공간 ‘스페이스 창배’ 개관 기념전이 지난달 11일 시작돼 오는 13일 막을 내린다. 황 화백의 자유혼을 작품으로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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