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1인 지배체제를 확고하게 굳힌 시점은 작년 5월 7차 노동당 대회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당 대회 직후 ‘노동당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추가로 얻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못지않은 권위를 확보한 것이다. 이 외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인민군 원수,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 김정은에게 붙은 호칭을 모두 합치면 9개에 이른다. 이 당 대회에서 아버지 김정일은 ‘탁월한 수령’으로,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으로 각각 불렸다. 백두혈통이 아니고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의 결정체인 셈이다.
북한을 벗어나면 김정은의 권위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중국만 해도 김정은이 ‘진싼팡(金三반)’, 즉 뚱보 3세라고 불린 지 오래됐다.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의 커뮤니티에서 이 단어를 검색하면 ‘관련 법률 법규 정책에 따라 잠시 폐쇄해 죄송합니다’라고 나온다. 북한이 검색 차단을 요청했다는 말이 들리지만 중국은 시인하지 않고 있다. 스위스 유학 시절 김정은의 별명은 ‘Dim(멍한) 정은’이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꽤 영리한 녀석(pretty smart cookie)’이라고 평가해 논란이 되고 있다. ‘cookie’는 할아버지가 손자뻘 아랫사람을 부르는 애칭으로 통한다. 71세인 트럼프 대통령 눈에는 33세인 김정은이 ‘젊은 친구’로 비칠 만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이 김정은을 ‘젊은이(young man)’라고 깎아내린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후한 김정은 평가는 꽤 이례적이다. 작년 대선 때는 ‘미치광이(maniac)’ 또는 ‘나쁜 녀석(bad dude)’이라고 김정은을 비난했다. 비호감 인물에서 호감 어린 사람으로 호칭이 바뀐 이면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림수가 있을 법하다. 그 속셈은 제쳐두고 이렇게 호칭이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것은 미국 대통령답지 못하다. 하긴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사악한 검은 원숭이’라고 욕설을 퍼부은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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