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일본·중국 기행 / 니코스 카잔자키스 / 열린책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혹은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52세때 1935년(2월 22일~5월 6일) 극동 여행에 대한 인상기이다.
일본과 중국에 대한 애정과 두려움 그리고 동양에 대한 그의 감정은 극동에서 에기나로 되돌아왔을 때 르노 드 주브날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나 있다. "동양에 대한 인상은 아직도 내 눈에 가득하고 내 마음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듯합니다. 내게는 유럽의 모든 것이 이제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고 무취하고 진부하며 또 슬퍼 보입니다. 나는 일본에서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았고, 중국에서 의미 깊은 인간적인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목가적인 풍경은 이제 사라졌다. 일본은 문을 활짝 열었고, 서양의 바람이 밀고 들어가 소용돌이친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것들이 생겨난다. 공장, 자본주의, 노동자 계급, 인구과잉, 의심 등등. 이제 세계의 중심은 태평양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태풍이 불고 우리 유럽 문명을 집어삼킬 것이다. 중국, 소련, 미국, 일본이라는 거대한 게임. 미래의 전쟁이 이곳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그는 예견한다.
세계에서 일본인들보다 정중한 사람들은 없다고 한다. 다테마에와 혼네라고 읽힌다. 다테마에는 겉치레, 예의이고 혼네는 속마음이다. 일본인의 웃음은 가면일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삶이 좀 더 기분 좋아지고, 인간관계가 좀 더 위엄이 있고 사랑스러워진다. 이것을 통해 자기를 단련하고 자제하며, 아픔을 안으로 포용하며, 민폐 끼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가면은 서서히 얼굴이 되고, 단순히 형식이었던 것이 본질로 변한다는 것이다.
카잔자키스, 고베와 오사카, 교토와 도쿄, 벚꽃과 대포, 게이샤들을 만나며 일본문화의 특성을 이해하다.
1. 나날의 임무를 수행하며 차분히 살아라.
2. 마음을 항상 순수하게 지녀라. 그리고 마음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라.
3. 조상을 숭배하라.
4.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황국신민사상).
중국 귀족들의 제례 법도는 3백 가지가 넘는다. 예의 규범은 3천가지나 된다. 중국인들은 조용하고 참을성 많으며 공손하다. 마음 속에 모든 모욕과 수치, 쓰라림을 모아 둔다. 자신의 생각에 어긋나는 짓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듣고, 그것을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하지만 어느 날 대가를 요구한다. 그 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금성을 가다. 눈 앞에 광대하고 신비한 경이가 펼쳐졌다. 넓은 대리석 계단, 가슴에 무거운 종을 달고 궁정의 광대처럼 웃는 작고 살찐 사자들, 동화에 나올 듯한, 전체를 금으로 장식한 궁궐들. 호령하던 왕들은 어디가고 귀신이 되어 궁궐의 지붕 위를 떠다니고 있는지, 기와지붕 위에는 잡초만 허망하다. 높다란 궁궐 대문들과 현판이 달린 문. 현판에는 금색으로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太和門(큰 행복의 문). 한 시절 황제의 궁녀들로 웅성거렸던 그 궁궐의 찬연함이라니.
중국인의 전족(纏足)문화를 체험하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3살이 되기 전 남자를 기쁘게 할 욕심으로 피륙으로 발을 싸매 발육이 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성인 여성의 경우 정상이라면 그 신발 치수가 240cm 정도는 할 것인데, 다 자라도 10cm를 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이 괴기하고 흉물스러운 기형 발이 여성의 음부를 명기로 만든다고 믿었다. 이 야만의 문화를 1000년이나 이어 왔다.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보았다. 중국의 도시에서 황혼녘 강의 제방에서 꽃배를 탔던 일이다. 꽃배는 떠다니는 창가(娼家)로서 꽃과 줄기 식물로 화려하게 장식한 창녀촌이다. 그곳에는 황색 키르케들이 물 위에 떠 있는 채로 살아간다. 숨이 막힐 듯한 대마초 냄새, 은은히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 이 배를 탈 때면 마치 강가의 동굴 속에 지은 고대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니 영화 속 장면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하다.
여행하는 동안 앙티브를 떠나 베른, 프라하, 모스크바, 베이징으로 향한다. 중국 우한에서 충칭까지 1천5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양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여행한다. 그다음 광저우로 향하고, 거기서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는다(접종 부위가 부풀어 오르고 팔이 회저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그해 10월 26일 그는 죽음을 맞게 된다). 광저우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도쿄, 교토, 나라, 가마쿠라로 간다. 2주일 뒤에는 알래스카로 갔다가, 코펜하겐을 거쳐 프라이부르크로 갔다. 한 사나이가 지구를 반 바퀴 이상 도는 대장정의 여행을 하면서 문장을 쓰다.
"나는 이제 자유로운 눈으로 보고, 모든 것을 환영한다. 명상, 선행, 아름다움의 추구, 이 셋은 최고의 지혜를 가져다준다" 그의 말이다. 여행을 하면서 그는 민족, 국가, 종교, 문명에 상관없이 인류를 거대한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낼 수 있는 맥락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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