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미국에선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괴짜 공학자 니콜라 테슬라 간에 일생을 건 승부가 펼쳐졌다. 직류와 교류 어느 것을 표준으로 삼을 것인지를 두고 벌인 ‘전류전쟁’이다. 에디슨은 자신이 틀을 잡은 직류를 지키려고 전기의자까지 만들어 교류의 위험성을 부각했지만, 끝내 패자가 되고 만다. 당대의 천재들 간 싸움의 양편에 제너럴일렉트릭(GE)과 웨스팅하우스(WH)가 있었다. 발명가 겸 사업가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설립한 WH는 테슬라로부터 특허권을 사서 GE의 공동창업자인 에디슨과 맞붙었다. 모태 기업을 기준으로 각각 139년, 131년의 연륜을 지닌 GE와 WH는 이후 전기·발전·가전 부문 등에서 미국 내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일본에는 창업 142년으로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바가 있다. 1884년 에디슨을 찾아간 공동창업자 후지오카 이치스케는 “전기제품을 수입에 의존해선 안 된다”는 조언을 듣고 일본에서 처음으로 백열전구를 만들었다. GE와 제휴해 텅스텐 전구도 개발했다. 도시바는 일본 1호 냉장고·세탁기·컬러TV와 세계 최초 노트북·낸드플래시 반도체를 출시한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다. 그 사이 GE도 ‘미국 제조업의 상징’으로 뿌리를 내렸고, WH는 세계 원자력발전소의 절반을 휩쓰는 등 승승장구했다. 일본의 첫 원전도 WH 작품이다.
교차 인연을 가진 세 거인이 2006년 한자리에서 만났다. 도시바는 매물로 나온 ‘WH 원전’을 강력한 경쟁자 GE를 제치고 54억 달러에 따냈다. 시장 적정가의 2∼3배를 쓰고도 득의만만했던 도시바엔 파멸의 시작이었다. 기대했던 ‘원전 르네상스’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물거품이 됐고, 도시바가 떠안은 손실만 7조 원대다. 결국 핵심사업인 가전·반도체까지 내놓으면서 해체 위기에 몰려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후진을 거듭하던 WH는 지난달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GE는 좀 다른 길을 갔다. 에너지·항공·운송·금융 등 문어발식 경영이나, 주력 부문을 처분한 것은 도시바와 닮은꼴이다. 그러나 도시바가 떠밀려서 매각에 나섰다면, GE는 한발 빠른 구조조정으로 돌파했다. GE는 이제 ‘4차 산업혁명에 최적화된 벤처기업’임을 자임한다. 연륜과 무관하게 시대 흐름을 앞서 읽는 ‘젊은 생각’이 기업의 흥망(興亡)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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