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기

[칼럼 760]曲線의 기억/홍정기 논설위원/문화일보/2017.01.

시온백향목 2017. 1. 23. 22:38

지난 연말과 연시, 또 저 멀리 올 연말.


 헌정이 예정해온 직선 스케줄대로였더라면 지금쯤은 새해 첫 주답게 연말 12·20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기대와 촉구의 담론이 흘러흘러 넘칠 것이다. 이젠 그 대선일이 실제로 언제일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몇 월 며칠일지는 커녕 얼마 후 봄일지 아니면 제법 더 지나 혹 여름일지도.


 그렇다. 19대 대선은 시간의 곡선(曲線) 저 어디쯤이다. 하지만 정치권 주변 시간은 직선이다. 일상의 의제가 대선에서 시작돼 대선으로 끝나다시피 한다. 이들 모두에게 대선까지는 뒤는 물론, 옆도 돌아볼 계제 아니라는 식이다. 과거는 진작 지나가 이미 화석이고 현재도 스쳐 지나치는 중이다. 미래오직 미래만이 있을 뿐이란다, 의미로든 가치로든.


 제대로 되돌아보면 정치권의 시간은 비틀려 있다. 지난가을 국회 국정감사 때만 해도 대개들 최순실에서 시작해 우병우로 끝났다라고들 했더랬다. 그 추색(秋色) 한가운데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순실게이트라고 이름 붙여 대한민국이 최순실 모녀에게 상납되고 있는데 청와대는 모른 체하고 있다고 할 때도 의혹이 의혹인 만큼 그럴듯한 과장법으로 치부할 정도로 참으로 순진한 나라의 너무도 무구(無垢)한 사람들이었다.


 아뿔싸, 그게. 순진한 나라 아니었다, 아예 나라가 아니었다. 무구한 게 아니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무람 그것이다. 대통령직이 모리(謀利)에 동원돼도 권부(權府)를 오가며 위세 떨치는 진박(眞朴)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최 씨 잘 알지아니, 기억하질 못한다니. 박근혜 대통령마저 최 씨 모른다고 안 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안 그런가


 하긴, 이젠 다 지난 화제지만 최 씨 사건 직전의 송민순 회고록 파란도 여간 아니었다. 그때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도 그랬더랬다. 그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언제나 변함없는 대북 저자세가 늘 거북했지만 정작 본인은 도대체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그냥 과거를 묻지 말라고 했더라면 더 묻지 않을 수 있었으련만


 기억이란 게 원래 그렇고 그런 것, 그러니까 권력과 가까워질수록 이렇듯 곡선으로 굽는 것인가. 기억과 기억력의 직·(直曲)이 저기쯤 다가오는 대선의 불변 테마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