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홀연히 나타나 바둑계를 평정하고 있는 고수가 둘 있다. 50연승을 질주하는 ‘마스터’와 ‘매지스터’다. 3일 인터넷 바둑 사이트인 ‘한큐바둑’이 주최한 온라인 대국 때의 일이다. 한(박정환 9단·2집반패)·중(커제 9단·불계패)·일(이야마 유타 9단·불계패) 등 3국의 1인자가 ‘마스터’에게 연패했다. 세계대회 우승 경력을 지닌 다른 17명도 일패도지했다.
바둑계는 ‘마스터’와 ‘매지스터’가 동일인이며, 그의 정체는 ‘알파고’일 것으로 믿고 있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을 압도한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 완전히 ‘넘사벽’이 되었다. ‘추정’ 알파고에 불계패한 박영훈 9단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이제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토로했다. 중앙의 두터움까지 집으로 계산하는 알파고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선(先) 이상의 실력 차이’라고 했다. 바둑에서는 먼저 두는 사람(흑)이 유리하기 때문에 덤(6.5~7.5집)을 상대방(백)에게 지불하고 둔다. 그런데 박영훈 9단의 말은 ‘이제 덤 없이 먼저(선) 두어야 알파고와 비슷할까 말까 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커제(柯潔)나 박정환, 박영훈 9단 등이 2점을 깔고 둬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아무리 어려운 수도 단 7초 만에 두는 실력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문제는 알파고 같은 실력자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알파고가 등장하자 중국은 “바둑 종주국이 서양에 뒤질 수 없다”면서 부랴부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결과는 놀랍다. 중국이 개발한 ‘줴이(絶藝)’와,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인 ‘싱톈(刑天)’도 80~90%의 승률을 기록 중이다. 커제(2승5패)·박정환(1승4패) 등도 쩔쩔매고 있다. 하영훈 한큐바둑 이사와 손근기 5단 등은 “알파고 등은 정수와 악수, 포석과 같은 인간의 고정관념대로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분에 매달리는 인간에 비해 알파고는 한 수 한 수를 둘 때마다 바둑판 전체를 조망하고 계산한다. 3000년 이상 인간이 축적해온 바둑의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다.
벌써 선~2점 접바둑의 차이가 됐다면 ‘인간의 바둑’은 앞으로 어찌되는가. 모골이 송연해진다. 때마침 인공지능 때문에 2025년이 되면 1600만명이 넘는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바둑계부터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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