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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59]‘조율’의 2017/김회평 논설위원/문화일보/2017.01.02

시온백향목 2017. 1. 22. 17:25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의 연주자로서의 삶은 극적이었다. 1955년에 녹음한 그의 첫 작품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지금까지 180만 장 넘게 팔리며 역사상 가장 많이 나간 고전음악 독주 앨범이 됐다. 건조한 듯 풍부하고, 빠르면서도 명징한 음들은 듣는 이의 상상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굴드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32세의 나이에 돌연 콘서트 무대를 떠나 영원히 돌아가지 않았다. 스튜디오에 파묻혀 리코딩에 전념했던 그의 반려자가 ‘CD 318’로 불린 그랜드피아노였다. 굴드는 예쁜 고음과 맑고 팽팽한 저음, 손가락에 민감한이 피아노와 로맨스에 빠졌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둘 사이에 시각장애인 조율사 베른 에드퀴스트가 있다. 그는 CD 318을 만난 후 이 피아노만 수천 번 조율하며 최상의 상태로 만들었다. 피아노는 같은 모델이라도 피아노선의 길이·직경·장력이 다르기 때문에 조율도 달라진다. 뛰어난 조율사는 수학적으로 순정한 것과 음악적으로 기분 좋은 것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낸다.(케이티 해프너, ‘굴드의 피아노’) 굴드의 명연주들은 3자 간 영혼의 결합이 이룬 성과다.


 바이올린의 생명은 울림이다. 바이올린 제작에 쓸 만한 가문비나무는 1만 그루 중 한 그루가 될까 말까다. 풍요로운 땅에서 나는 나무에는 울림이 적다. 고도·방위·풍향·기후·토질 등에서 척박한 곳에서 울림 있는 나무들이 자란다. 역경을 견디면서 나무는 저항력을 기르고 세포는 진동하는 법을 익힌다.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울림은 공명을 다루는 데서 생겨난다.


 공명은 본디 현이 균일하게 진동하는 것을 막는 위험 요소다. 공명이 없다면 바이올린을 더 쉽게 다룰 수 있겠지만, 그때 울림은 생명을 잃는다. 좋은 울림에는 언제나 대립적인 특성이 함께 들어 있다.(마틴 슐레스케, ‘가문비나무의 노래’) 


 지난해 10차례 주말 광장 집회에서 울려 퍼진 노래 중 한영애의 조율은 가장 인상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은 곧 조율의 실패였다. 시민들이 선택한 방식은 잘 조율된 형태의 평화 집회였다. 한영애는 잠자는 하늘님이여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의 끝을 조율 한번 해냅시다로 고쳐 불렀다. 탄핵과 대선, 개헌 등 어느 때보다 맞선 목소리가 커질 올해 다시 듣고 싶은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