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기

[칼럼 756]2017년을 살아가는 법/고미석 논설위원/동아일보/2017.01.02

시온백향목 2017. 1. 19. 15:34

 ‘멈추면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혜민 스님이 최근 방송에서 들려준 일화다미국 유학 시절그룹 과제의 역할 분담을 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을 자원했다. ‘내가 모범을 보였으니 다른 사람들도 돌아가면서 어려운 과제를 맡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웬걸번번이 귀찮은 건 죄다 스님한테 떠맡기는 게 아닌가거절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던 스님에게 한 선배가 조언했다. “너 자신에게 먼저 친절하세요!”


 수필집 백년을 살아보니를 펴낸 원로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했다. “97년을 살아보니 더불어 살았던 때가 행복했던 것 같다내가 남겨준 것이 쌓여서 역사가 되더라다른 사람의 짐을 내가 대신 져준 기억이 행복하게 오래 남더라젊은이의 고민을 대신해 주고기독교의 고민정치가의 고민을 내가 대신 생각해 보았을 때 같은 경우다.”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와 남의 짐을 대신 져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을 새해 목표로 정했다서로 상충되는 가치처럼 보이지만 건강한 몸을 위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균형 있게 섭취해야 하듯이 건강한 마음을 위해서는 과부족 없이 둘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관건일 터다어느 쪽이 참인지 아리송했던 아는 것이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모순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처럼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해 남의 판단에 휘둘린 리더사리사욕을 챙기는 데 눈멀었던 이기적 엘리트 때문에 뒤숭숭한 마음으로 2016년과 작별했다그러나 이들의 추락은 건전한 정신바른 인성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한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런 포스터를 제작했다. ‘Keep calm & Carry on(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십시오).’ 우리에게 자천타천의 대선주자는 수두룩해도 이제부터는 우리가 치열하게 싸울 터이니 국민 여러분은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시길”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안 보인다한바탕 태풍이 지나가면 바닷속이 정화된다고 한다거대한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온 대한민국호새해에 그런 복을 누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