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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53]대선주자 사자성어/이기환 논설위원/경향신문/2017.01.01

시온백향목 2017. 1. 15. 19:42

                               

 ‘근검협동(勤儉協同) 총화유신(總和維新).’ 197411일자 신문에 실린 박정희 대통령의 신년휘호다. 그런데 바로 신년휘호 사진 옆의 기사가 살풍경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체제를 부정하는 일체의 불온한 언동과 개헌 서명운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기사가 떡하니 실렸다. 대통령이 되기도 전인 1962(혁명완수)부터 1979(총화전진)까지 빼놓지 않고 신년휘호를 발표했지만 매양 이런 식이다. 유비무환(72)·국력배양(73)·국론통일(75)·자조자립(76)·총화약진(77)·자주총화(78) . 온통 단결하라’ ‘홀로서라따위의 ‘~하라식 으름장이다. 이쯤 되면 시민의 삶을 어루만지는 신년휘호가 아니라 일방통행식 신년협박이 아닐 수 없다.


 역대 최악의 사자성어는 2015년 청와대 시무식에서 역설했다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파부침주(破釜沈舟)’일 것이다. 파부침주는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마저 가라앉힌 채 결사항전하겠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당시 정윤회 문건을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아닌 청와대 비서관의 문서유출 사건으로 몰아붙였다. 김 전 실장은 ()은 한자로 쓰면 중심이며,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는 둥 군기가 문란한 군대는 적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둥 다른 마음(異心)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둥 대통령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을 위해 파부침주를 외친것이다. 그 알량한 사자성어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역사는 백성이 아닌 군주만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자, 그 자를 일컬어 간신이라 한다.


 최근 대선주자들도 새해를 맞아 경쟁적으로 기발한 사자성어 발굴에 나섰다.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시간낭비할 필요가 없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사자성어가 있다. 허균의 유민가외(唯民可畏)’이다. ‘천하에 두려운 것은 오로지 백성뿐(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이라 했다. 순자의 주수군민(舟水君民)’은 어떤가.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물은 배를 띄울 수도, 가라앉힐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면 될 것을 뭐하러 머리 싸매고 그 어려운 사자성어를 찾아 헤매는가. 그 시간에 서민들의 삶을 어루만질 대책을 세우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