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근무시간이다.” “대통령이 어디에 있든 그곳은 업무공간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근무 형태에 대해 이같이 말한 바 있다. 대통령의 모든 행위가 공적인 업무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박 대통령도 지난 1일 기자 간담회에서 “제가 가족이 없기 때문에 관저에 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놓고 있고 일정이 없으면 업무 공간이 관저”라고 말했다. 관저가 대통령의 사적인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이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지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일 박 대통령의 올림머리 여부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관저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일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변했다. 당시 김장수 안보실장도 관저에 있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지 못하고 유선상으로만 했다고 밝혔다. 관저가 공적인 영역이라고 하면서 정작 비서실장이나 안보실장은 위급한 상황에도 가볼 수 없는 곳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비선 의료 논란에 대해 ‘대통령의 사적 영역’ 운운하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도 “대통령도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걸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 열심히 한다는 걸 홍보하고 싶을 때는 모든 일이 업무라고 하다가 불리한 것은 사생활이라고 적극적으로 방어막을 치는 이중적인 행태다.
대통령에게 사생활이 있는 것인지는 논쟁거리지만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일수록 국가 최고지도자의 일정은 분(分) 단위까지 공개된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막중한 대통령의 의무로 보면 사생활이 허용될 틈이 없다. 사생활에 관대한 프랑스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엘리제 궁을 빠져나와 여배우와 밀회를 즐기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그의 최근 지지도는 박 대통령과 같은 4%대로 떨어졌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백악관에서 인턴사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수차례 성관계를 가져 결국 위증 혐의로 탄핵 표결까지 갔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비선 의료행위를 사생활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나라라면 용인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 아닌 어려서부터 살아온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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