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격(人格)은 역시 좁은 승용차 안에서 드러나는가 보다. 역대 정치·기업 관련 대형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가 운전기사에 의해 밝혀진 사례가 많은데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진실 여부는 수사로 밝혀내야 할 것이다. 최 씨 집안에서 17년간 운전기사로 일했다는 김모(64) 씨는 이들의 행태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진술하고 있다. 그동안 받아왔던 수모와 비인간적 대우 때문이다. 수천억 원대 자산가인 최순득 씨의 운전기사는 순득 씨가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중 대기하다 국수 전골을 시켜 먹었다는 이유로 “그 비싼 국수 전골을 누구 맘대로 시켜 먹느냐”며 욕설까지 들었다고 한다.
최순실 씨의 운전기사 김 씨는 지난 1998년 4월 박 대통령이 정계 입문한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 당시 모친 임선이 씨와 네 명의 딸이 각각 5000만 원씩 2억5000만 원을 현금으로 만들어 여행용 가방에 넣어 당시 박 대통령의 집인 대구의 한 아파트로 운반했다고 말했다. 이어 2000년 16대 총선 때도 똑같은 방법으로 돈을 옮겼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 씨는 박 대통령 앞에서는 “언니, 언니” 하면서 치켜세우다가도 모친 임 씨와 대화할 때는 “엄마, 엄마, 자기(박 대통령)가 아직 공주인 줄 아나 봐”라고 뒷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에게 박 대통령은 잘 키운 ‘아이돌 스타’였던 셈이다. 최 씨의 언니 순득 씨의 운전기사도 “차를 타고 가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라디오 프로그램 선곡도 지시할 정도로 방송·연예계에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폭로했다. 특히 딸인 장시호 씨의 연세대 부정입학 의혹과 관련, “입학 전 남편 장모 씨를 새벽 5시에 연세대에 데려다줬는데 교정에서 어떤 사람과 단둘이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부정 입학 의혹도 제기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비리 사건도 운전기사가 승용차 트렁크에 들어 있는 돈 상자를 사진으로 찍은 것이 단서가 됐고, 2002년 최규선 게이트,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새누리당 박상은 전 의원 불법 정치자금 사건 등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대기업 사주들의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 논란도 큰 이슈가 됐다. 지난 2015년 별세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운전기사는 40년을 가족처럼 함께했다고 하니 참으로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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