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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33]光化門의 영욕/황성규 논설위원/문화일보/2016.11.25

시온백향목 2016. 12. 18. 16:12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 조선의 정궁(正宮) 경복궁(景福宮)의 주소다. 그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은 권부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의 모습은 하마터면 못 볼 뻔했다. 일제가 궐 안에다 콘크리트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광화문을 헐어 없애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거센 역풍이 불어왔다. ‘사라져 가는 조선의 한 건축물을 위하여라는 한 편의 철거 반대 글이다. 필자는 일본인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 19228월에 발표된 이 글이 번역돼 바로 다음 달 국내에 소개되자 철거 반대 바람이 들불처럼 번졌다. 결국, 일제는 광화문 철거 계획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移建)’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600년 광화문의 영욕사는 이보다 훨씬 더 길다. 광화문은 조선 개국 4년째이던 1395년 경복궁이 건립되면서 동··북쪽의 건춘·영추·신무문과 함께 4대문의 하나로 남쪽에 세워졌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865(고종 2) 경복궁을 중건할 때 함께 복원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전되고 19506·25전쟁 때 파괴됐다가, 1968년 석축 윗부분이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다시 건립됐다.

 ​광화문의 건립 당시 이름은 정문(正門)이라는 뜻에서 오문(午門)이라고도 했으나, 세종 7(1425)에 오늘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국왕의 덕()은 사방을 덮고, 바른 정치()는 만방에 미친다는 뜻을 담아 집현전 학자들이 건의한 이름이다. 이 궁의 주인인 임금의 책무를 새긴 것이다. ‘서경(書經)’ 요전(堯典) 편에 나오는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이 원전이라고 한다. 이 광화문의 첫 글자 빛 광은 꿇어앉은 사람()의 머리 위 불빛()을 뜻한다. , 될 화()는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던 사람(오른쪽 획)이 행실이 바른 사람(왼쪽 획)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문 문()은 영어로 게이트(gate)! 한자 뜻만으로도 광화문은 성난 촛불 민심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하다.


 주말마다 그 광화문광장에 수백만 개의 촛불이 모여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모름지기 대문은 열려 있어야 민심과 소통할 수 있고 훌륭한 인재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게이트가 닫혀 있으면 외부와 불통인 채 비선(秘線) 실세들이 설치면서 구린내가 동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