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 조선의 정궁(正宮) 경복궁(景福宮)의 주소다. 그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은 권부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의 모습은 하마터면 못 볼 뻔했다. 일제가 궐 안에다 콘크리트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광화문을 헐어 없애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거센 역풍이 불어왔다. ‘사라져 가는 조선의 한 건축물을 위하여’라는 한 편의 철거 반대 글이다. 필자는 일본인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 1922년 8월에 발표된 이 글이 번역돼 바로 다음 달 국내에 소개되자 철거 반대 바람이 들불처럼 번졌다. 결국, 일제는 광화문 철거 계획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移建)’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600년 광화문의 영욕사는 이보다 훨씬 더 길다. 광화문은 조선 개국 4년째이던 1395년 경복궁이 건립되면서 동·서·북쪽의 건춘·영추·신무문과 함께 4대문의 하나로 남쪽에 세워졌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865년(고종 2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함께 복원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전되고 1950년 6·25전쟁 때 파괴됐다가, 1968년 석축 윗부분이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다시 건립됐다.
광화문의 건립 당시 이름은 정문(正門)이라는 뜻에서 오문(午門)이라고도 했으나, 세종 7년(1425년)에 오늘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국왕의 덕(光)은 사방을 덮고, 바른 정치(化)는 만방에 미친다는 뜻을 담아 집현전 학자들이 건의한 이름이다. 이 궁의 주인인 임금의 책무를 새긴 것이다. ‘서경(書經)’ 요전(堯典) 편에 나오는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이 원전이라고 한다. 이 광화문의 첫 글자 빛 광은 꿇어앉은 사람(兀)의 머리 위 불빛(火)을 뜻한다. 또, 될 화(化)는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던 사람(오른쪽 획)이 행실이 바른 사람(왼쪽 획)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문 문(門)은 영어로 게이트(gate)…! 한자 뜻만으로도 광화문은 성난 ‘촛불 민심’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하다.
주말마다 그 광화문광장에 수백만 개의 촛불이 모여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모름지기 대문은 열려 있어야 민심과 소통할 수 있고 훌륭한 인재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게이트가 닫혀 있으면 외부와 불통인 채 비선(秘線) 실세들이 설치면서 구린내가 동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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