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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탄핵한다.’
프랑스의 문호 에밀 졸라(1840∼1902)가 1898년 1월 13일자 ‘로로르’(L’AURORE·여명)지 1면에 실은 격문 ‘자퀴제…!’(J’Accuse…!)를 한국과 일본은 이렇듯 ‘고발’과 ‘탄핵’으로 달리 옮긴다.
독일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된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를 구명하기 위한 그 격문을 졸라는 ‘영혼의 외침’이라고 자신하고 자부했다 - “영혼의 이 외침으로 법정으로 끌려간다 해도 내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부제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였듯이 대통령을 향한 질정(叱正)도 지성사에 남을 질감 그 자체다 - “대통령 각하, 정직하게 살아온 한 시민으로서 솟구치는 분노와 더불어 온몸으로 이 진실을 외치는 것은 당신을 향해서입니다.”
‘활 튕길 탄(彈), 캐물을 핵(劾)’과 닮은, 그러면서 더 쉬운 말 찾을 것 아닌 어제오늘이다. 국정농단의 죄를 묻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담론이 시절의 언어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닮은 말 찾자면 먼저 ‘고발’ 정도…, 졸라의 격문을 일본은 ‘탄핵…’, 우린 ‘고발…’로 옮기듯이.
그렇다고 ‘탄핵’을 그냥 그대로 ‘고발’로 덮어쓰긴 영 찜찜하다. 헌법 제65조 1, 2, 3항의 탄핵 소추를 ‘고발 소추’라 할 것도, 제113조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고발 결정’으로 할 것도 다 아니다.
다시 ‘자퀴제’의 흔적을 좇아 일본의 다른 용례를 더듬어 본다. 일본 헌법의 탄핵 규정 - 제64조(탄핵재판소) 제1항 - ‘국회는, 파면의 소추를 받은 재판관을 재판하기 위하여, 양원의 의원으로 조직하는 탄핵재판소를 설치한다.’
우리의 ‘탄핵 소추’에 해당하는 일본 용어가 ‘파면 소추’, 다시 말해 ‘탄핵’이 곧 ‘파면’이다. 우리 헌법 제65조 4항도 탄핵과 파면을 함께 말한다 - ‘탄핵 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그렇다, ‘탄핵’과 닮은 말로는 ‘고발’보다 ‘파면’이 더 그럴듯하다. 백출하는 탄핵 논의가 국회의 소추 단계를 지나 헌재 심판과 결정 단계에 다다르면 그 주문은 둘 중 하나가 된다.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가 되든지 ‘대통령(박근혜)을 파면한다’가 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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