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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32]止止/김회평 논설위원/문화일보/2016.11.24

시온백향목 2016. 12. 15. 14:00

 그칠 지()의 이미지는 정적(靜的)이나 쓰임새는 동적이다. 는 발 모양을 본뜬 글자다. 를 두 개 겹치면 걸음 보()가 된다. 좌우 발이 앞뒤로 있어 걷는 것이다. 보행로 확장과 연결에 관심을 쏟았던 승효상 전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머물기 위해 걸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걷고 싶은 도시가 머물고 싶은 도시다. 변증법의 핵심어인 지양(止揚)에서 도 정체 상태가 아닌, 모순·대립 해소를 위한 전략적 멈춤이다.


 기업의 기()는 사람()이 머무르는() 형상이다. 직원이 오래 일할 수 있다면 좋은 기업이다. 우샤오후이(吳小暉) 중국 안방보험 회장 같은 이는 사람이 떠나면 일이 멈추게 된다며 인재경영을 표방한다. 시류에 휩쓸려 중심을 잡기 힘들 때 한번() 호흡을 멈추고() 바라보면 바른() 생각에 이를 수 있다. 불교 수행법의 하나인 지관(止觀)역시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혀 집중하는 것이다. 군주를 상징하는 어()의 가운데 부분이 말을 뜻하는 오()를 붙인 형태인 것도 흥미롭다. 누군가는 한자 한 글자에 철학개론 한 권이 들어있다고 했다.


 일찍이 멈춤은 지식인의 처신을 경계하는 의미로 쓰였다. 노자 도덕경 44장에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는 내용이 있다.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 중 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知足願云止)고 한 구절은 그 변용이다. 지지(知止)는 멈출 곳, 멈출 때를 아는 것이다. 이미 허물이 있어도 도중에 멈출 줄 알면 최악은 면할 수 있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는 자신의 거처를 지지헌(止止軒)’이라 짓고는 그 뜻풀이를 이렇게 달았다. ‘지지란 멈춰야 할 곳을 알아 멈추는 것을 말한다. 멈출(머물) 곳이 아닌데도 멈춰 있으면 그 멈춤은 멈출 곳에 멈춘 것이 아니다.(夫所謂止止者, 能知其所止而止者也. 非其所止而止, 其止也非止止也.)’ 국문학자 정민(한양대) 교수가 죽비소리’(2005)에 인용한 글이다. 지지(知止)가 지혜라면, 지지(止止)는 실행이다


 멈춰야 할 지점도 타이밍도 흘려보낸 1인의 욕심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멈춰 섰다. 민심 역주행을 그칠 기미도 없다. 이규보의 글에 붙인 정 교수 촌평이 자못 신랄하다.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주저물러 앉아 있으면, 솎아져서 뽑히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