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스크랩] 아직도 그리운 어머니

시온백향목 2011. 3. 29. 22:39

아직도 그리운 어머니


수필/ 이영희


어머니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듭니다.

고까신 신겨 외갓집 갈 때 언덕아래서 동생에게 젖을 물리며

시루떡 한 조각 뜯어 입에 넣어주며 우리 딸은 이쁘게 커야 한다고 하시며

겨울이 깊어가는 황량한 들녘에 부는 바람결에 들려주시든

쉰이 넘어서도 왜 이리 어머니 그 말씀이 그리울 가요?

외손주 장가보내는 날 저만치 옥양목 옷 대려 입고 들어 설 것 같아

문가에 눈을 뗄 수 없든 마음 어머니 알고 계시지요

독한 시집살이에 손이 터시고 아름답든 얼굴이 여름이면 그을린 야윈 모습

유년의 나는 철없이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해 여름 장티브스가 마을 휩쓸 때 신은 어머니를 살펴 주지 않았지요.

전신에 물집이 터져 시체처럼 누워 계시는 머리맡에 눈물범벅 되어 보내든 밤

그래도 숨 쉬고 있는 어머니체온에 잠들고 했지요


잔인한 가을에 마른 볏 집을 베며 한 톨 여물지 않은 추수를 가슴 찢어지듯

안아야 하는 세월들...

감나무에 주렁주렁 감이 열리면 밤을 모르고 장만하여 도시로 내다 팔며

학비를 만들어 손에 쥐어 주시고 여우가 울어 애든 산마루까지 마중 나오시든 나의 어머니

한스런 세월 속에 어머니는 신처럼 존재하여

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비가 추적거리는 날은 젖은 신발 걱정되어 교문 앞에 서성이든 당신 발은 젖어

사계절을 몰랐었지요.

보리밥 싸준 도시락이 부끄러워 부엌에 팽개치고 달아난 아이를 나무라듯 들고 온

교정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지요.

그 길을 가는 뒷모습에 석양빛은 왜 그리 고왔을까.


어머니 아들을 장가보내고 나도 어른이 되었을까요.

어머니 사랑만큼 해줄 자신이 없습니다.

희생하며 뼈를 잘라서도 자식 위해 가슴 태우시는  무량한 그 사랑

강물처럼 흘러 흰머리 희끗해진 아픔만이 덩그러니 섬돌에 놓인 체

당신은 정녕 없습니다.


길을 가다 돌아보는 사람 중에 어머니 당신은 없었습니다.

김치국밥에 한 술 떠시고 흙 밭이 안식처 인양

등잔불을 켜두신 희미한 행복이 스멀거릴 때

곤한 잠에 하루를 눕히시든 지난한 삶

무엇으로 채워 주리오.


어머니 그립습니다.

출처 : 이영희 문학세계
글쓴이 : 하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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