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회 아카데미상 작품상·감독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컨택트’(원제 ‘Arrival’)는 외계인과의 ‘소통’을 다룬 공상과학(SF) 영화다. 다리 7개 달린 생물체들이 탑승한 반원형 비행체가 지구촌 12곳에 일제히 출현하면서 인류는 혼란에 빠진다. 침입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투입된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애덤스)는 이들로부터 ‘무기를 주다’라는 첫 메시지를 얻는다. 언어체계가 다르고, 시간 개념도 판이한 외계인의 ‘무기’가 싸움 도구가 아닌 진정한 소통임이 드러나면서 위기는 종결된다. 해피엔딩으로 이끈 키워드가 ‘넌제로섬(non-zero-sum)’이다. 루이스는 먼저 떠나보낸 딸이 언젠가 학교 과제물을 작성하면서 “양 진영이 모두 이길 수 있을 때 쓰는 말이 뭐야?”라고 묻자 “윈-윈인가?”했다가 “넌제로섬 게임!”으로 바로잡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점차 확신을 가진다.
제로섬 게임은 한쪽이 얻는 만큼 다른 쪽은 잃는 역의 상관관계다. 넌제로섬 게임에서는 이해가 상반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가 이득을 얻는 윈-윈도 아니다. 게임의 진행에 따라 함께 승리할 수도, 패할 수도 있는 일종의 잠재력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에 던져진 현대인에게는 제로섬 게임이 훨씬 실감난다. 그러나 ‘넌제로’(말글빛냄·2009)를 쓴 진화심리학자 로버트 라이트는 넌제로섬 원리가 인류와 생물의 진화를 이끈 핵심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제로섬에 의존하는 생명체나 집단은 일시 득세할 수 있으나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넌제로섬을 ‘당신에게 빚지고 있다’는 IOU(I owe you)로 줄여 표현했다. 에스키모인에게 ‘남은 음식을 저장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다른 이의 위장’이다.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넌제로섬은 사회 복잡성이 커질수록 더 빛을 발한다.
이런 견해에 정면 도전한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다. 취임사에서 “외국 산업을 풍요롭게 하는 대가로 미국 산업이 희생됐다”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것은 제로섬 세계관의 전형이다. 그에게 국가 간 거래는 빼앗고, 빼앗기는 싸움이다. 하지만 미국의 진정한 힘은 군사력·경제력보다 개방·포용 정신에서 온 것이다. 국내에선 가진 자의 돈을 빼앗아 나눠주겠다는 식의 대선 공약이 넘쳐나고, 갈 곳 잃은 기업의 투자·일자리를 트럼프가 덥석 채가고 있다. 제로섬, 아니 네거티브섬 정치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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