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를 보게 되면 서양문화에선 우선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위해 해부를 하려고 하지만, 동양권에선 연꽃을 연상한다.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세계의 시각화’가 추상화(抽象畵) 그리는 일 아니겠는가. 바람은 불지만 보이지 않고, 향기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것들을 그리고 싶다.” 한국 추상화의 거장(巨匠) 윤명로(81) 화백이 해온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낸 정형민 서울대 미대 교수가 “자신의 숨결에 붓을 맡기는 무위(無爲)의 미학을 터득한 듯하다”고 표현하는 윤 화백의 작품을 두고 프랑스 파리 제1대학 조형대학원 교수인 미술평론가 도미니크 샤토는 이렇게 표현했다. “자연의 음악이다. 침묵 속에서 자연의 리듬을 불러일으키며 음악적 신비와 만난다.”
윤 화백이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서울대 미대 회화과 3학년 재학 중일 때였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소설 ‘벽’을 읽은 감동을 담아낸 작품 ‘벽B’가 ‘국전’으로 불리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직후에 그는 반(反)국전 운동을 위한 ‘1960년 미술가협회’ 결성을 주도해, 덕수궁 돌담길에서 한국 최초의 야외 전시회를 열었다. 국전이 예술을 세속적으로 서열화하면서 세계의 흐름은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때부터 추상화에 몰입한 그의 그 시기 대표작 ‘회화 M10’은 1963년 제3회 파리비엔날레에 출품돼 그가 세계 미술계의 중심부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맑은 물도 고여 있으면 썩는다’고 믿는 그는 일정 기간마다 연작 주제를 변화시켜 왔다. 약속과 규범을 빗댄 자 또는 지배자를 생각하게 하는 ‘룰러(ruler)’를 비롯, ‘균열’ ‘얼레짓’ ‘익명의 땅’ ‘겸재(謙齋)예찬’ 등으로. 최근 주제 ‘바람 부는 날’과 ‘고원(高原)에서’ 연작은 자택 마당의 눈을 쓸면서 비질이 남긴 흔적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 철물점에서 사온 싸리비를 붓으로 삼아 그렸다. “도저히 붓으론 표현 안 되는 감정과 감성이 들어가 있다”는 그 작품들을 포함해 시기별 대표작 60여 점으로 그의 화업(畵業) 60년을 보여주는 회고전 ‘그때와 지금’이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지난 1월 18일 개막, 오는 3월 5일까지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바람과 향기를 저마다 다른 상상력으로 느끼면서, 받는 감동은 같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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