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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78]오태석 연극 55년/김종호 논설위원/문화일보/2017.01.20

시온백향목 2017. 2. 14. 15:44

세상의 모든 질서와 평범한 일상이 하루아침에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열한 살에 목격했다. ‘! 이건 가짜다하고 생각했다. 그때 연극을 처음 본 것이다.” 흔히 전통의 재발견과 현대적 수용을 통해 한국적 연극을 창조하고 세계화한 거장(巨匠)’으로 일컬어지는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인 오태석(77)의 말이다. 6·25 당시 기습 남침한 북한군이 현재 청와대인 당시 경무대의 법무관이던 부친을 납치해가고 집안이 풍비박산한 일을 연극에 빗댔다.


 그는 연세대 철학과 2학년이던 1962년 국립극장 공모 사실을 뒤늦게 알고 상금 30만 원이 탐나 하룻밤 새 써서 응모했던 희곡 영광이 당선되면서 연극의 길로 들어섰다. 그 이래 한국 연극의 새 지평을 열어온 작품이 ’ ‘춘풍의 처’ ‘백마강 달밤에’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등 수두룩하다. 70여 편에 이르는 그의 희곡 중에 한국 연극 최초의 해외 공연작인 초분(草墳)’만 해도, 새로운 형식으로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국내 초연된 이듬해인 1974년 미국 뉴욕에서 한국어로 공연돼 현지 언론의 격찬을 받았다. ‘배우 사관학교로 불리는 극단 목화를 1984년 창단해 이끌어온 그는 연극은 관객의 몫이 6이라고 말한다. 관객의 사유(思惟) 영역을 많이 남겨둬, 관객이 상상력을 동원해 생략된 부분을 채우고 비약을 이으며 완성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비극은 싫다. 삶 자체가 비극인데, 허구의 세계로 지친 사람을 구해줘야 한다면서 누군가가 버리고 간 것들을 주워 모아 깨끗하게 정돈해서 다시 쓰게 하고, 누군가의 주머니에 넣어 주곤 했던 대학로(연극계)의 미화원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하는 그가 영광을 쓴 지 올해로 55년이다. 그는 신작 희곡 도토리를 자신의 연출로 극단 목화를 통해 지난해 초연한 데 이어, 오는 2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장충동의 국립극장 무대에 다시 올린다. 지적 장애로 자신은 방어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것을 소중히 지켜주려고 헌신하는 주인공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모질고 박정한 세태에 그가 불어넣으려는 온기(溫氣)인 듯하다. 배우는 무대에서 맨발이어야 하고, 상대 역의 배우가 아니라 관객을 향해 말해야 한다고 믿는 오태석의 연극 지평이 무한 확장되고 있다고 느끼게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