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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77]반디와 솔제니친/황성준 논설위원/문화일보/2017.01.19

시온백향목 2017. 2. 13. 15:41

 “그건 바로 늙은 마귀가 자기의 종들한테다 온통 웃는 마술을 걸어놓았기 때문이었다네요.(중략)그러니 글쎄 생각 좀 해보시우. 그 동산 사람들의 입에서는 어디가 아프거나 슬퍼서 엉엉 울어도 그것이 하하호호 하는 웃음소리만 되어 나왔으니 세상에 그처럼 악한 마술이 어디 있고 그처럼 무시무시한 동산이 또 어디 있겠수.”


 북한의 반체제 작가 반디(필명)의 단편 소설 모음집 고발에 수록된 복마전의 한 대목이다. 반디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소속 작가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배고픔과 체제 모순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목도하고, ‘김 씨 조선에 대한 고발성 소설을 쓰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국으로 밀반입돼 2014년 처음 출간됐으며, 2016년엔 프랑스어판, 일어판, 포르투갈어판이 출판됐다. 그리고 소설가 한강의 장편 채식주의자의 번역으로 지난해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공동 수상한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영어판이 오는 3월에 출판될 예정인데, 이 영어 번역은 영국 펜(PEN)이 선정하는 번역상의 지난해 하반기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작품의 진위에만 관심을 둘 뿐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한국과 달리 외국에서는 그 문학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반디는 흔히 한국의 솔제니친으로 불린다. 그러나 반디가 처한 상황은 솔제니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지명도가 떨어지고 노벨 문학상을 못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한국 문단에선 없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 고발22개국에서 이미 번역·출판됐거나 그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또 반디 노벨상 추진위원회도 구성돼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작품은 소련의 지하출판물인 사미즈다트형태로 배포돼 당시 러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읽혔던 반면, 반디의 작품은 북한 주민들과 단절돼 있다.

 

 작가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고향에서 읽힐 수 없다는 것처럼 서글픈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이것 자체가 북한 체제의 본질이기도 하다. 최근 외부 정보 유입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외부 정보 못지않게, 북한 내부 정보가 북한 사회에서 유통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반디와 같은 북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인쇄, 북한으로 유입시키는 작업을 본격화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