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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 대통령이 당권을 쥐고 있던 2004년 정치에 입문한다. 꼭 10년 전 김영삼 청와대의 정책 브레인으로 ‘세계화’를 국가 어젠다로 만들었고 MB가 대선 공약으로 차용한 ‘선진화’ 화두까지 창안해 냈다. 비례 초선 의원인 그를 당내 요직인 정책위의장에 발탁할 정도로 박 대표는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세종시 이전 문제로 결별했다.
박세일은 다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2005년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설립했다. 대한민국 선진화와 남북통일은 그가 열정을 쏟아부은 필생의 과제다. 14일 빈소를 찾은 MB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아까운 사람이 먼저 갔다”라며 유족을 위로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정길 울산대 이사장도 빈소에서 “좌우로 갈라진 혼란기에 꼭 필요한 인물인데…”라며 애통해했다.
그의 좌우명은 이천하 관천하(以天下 觀天下)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백성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는 뜻이다. 그 말대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자세로 선진화와 통일에 신명을 바쳤다. 서생(書生) 박세일, 2012년 정당 ‘국민생각’을 만들어 정치 개혁에 나섰지만 시대는 그를 외면했다. 문제의식은 웅혼했지만 상인의 현실 감각이 부족했던 것일까. 보수진영 거대 담론의 생산자인 그는 시대를 앞서간 경세가였다. 그는 “통일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통일의 대업(大業)을 완수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개탄하곤 했다. 부디 편히 눈감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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