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구려가 백제박물관으로 들어왔다. 서울 올림픽공원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다음달 26일까지 열리는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이다. 실물 크기로 재현한 안악 3호분부터 관객을 맞는다. 무덤 회랑에 그려진 행렬로가 거대하다. 등장 인물이 250여 명에 이른다. 무덤 주인이 탄 수레를 중심으로 관리와 군사들이 행진하고 있다. 한때 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고구려인의 기상을 상상해 본다.
전시에는 고구려 벽화고분 5기의 실물 모형이 나왔다. 역사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강서대묘(평남 강서군)의 사신도(四神圖)도 볼 수 있다. 모두 북한에서 만든 작품이다. 2002년 말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던 ‘특별기획전, 고구려!’에 출품됐던 것이다. 그간 창고에 있던 유물을 민화협 측이 지난해 백제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이번 자리가 성사됐다. 한국 미술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고구려 고분벽화는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11년 전 평양을 찾은 것은 고분들의 보존 상태를 과학적으로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남북 문화 교류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연구진은 1500년을 견뎌 온 고구려 벽화의 안료를 밝혀내는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이후 남북 간 만남은 꽉 막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핵 위협에 교류라는 단어가 한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고구려는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 삶 속에 면면히 이어지는 호방한 기질”(최종택 고려대 교수), “의식주 등 한국 문화 전반의 원형”(전호택 울산대 교수) 등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킨 동북공정(東北工程) 또한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리셋(reset) 작업에서도 고구려는 남북을 다시 잇는 공통분모가 된다. 당장 눈앞이 캄캄하더라도 통일의 세상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전시장 마지막 코너, 안악 3호분 가상현실(VR) 체험장이 있다. 특수안경을 낀 아이들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본다. 그 아이들에게 진짜 고구려를 찾아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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