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기쁨 ―김이듬(1969∼ )
해운대 바다야, 아니 바다 아니고 바닷가야. 작은 여자가 자기 머리칼을 한 묶음 손으로 쥔 채 몸을 숙이고 모래밭에서 한참 동안 뭔가를 찾고 있어. 그녀에게 뭘 그리 열심히 찾고 있냐고 물어보았지. 몰라도 된다고 하네. 나는 그녀가 그 백사장에서 썩어서 하얗게 바랜 애인의 유해를 찾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
어리둥절해지는 순간에, 뭐하러 손가락으로 모래 위에 적고 있나, 몰라도 된다고 나는 내게 말하지. 내 생각의 절반 이상은 몰라도 되는 생각, 억지스런 상상. 난 눈을 질끈 감아보지. 보이지, 캄캄한 심해의 눈 없는 물고기처럼 비로소 나는 활발해지지. 죽은 나의 사람들이 지하 언덕에서 지느러미로 춤추며 나를 건드려. 나는 출렁거리지. 돌멩이도 노래하고 저녁도 낄낄거리네. 멈추지 않는 슬픔, 검은 파도, 도저히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해. 금이 간 찻잔 같은 얼굴로 나는 웃고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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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좀 이르거나 갓 지난 해수욕장이다. 아니면 제철인데 날이 저물기도 했고, 하늘에 먹구름이라도 끼어서 해수욕객들이 거의 돌아갔을까. 한적한 바닷가 모래밭에서 아마 ‘멍 때리고’ 있었을 화자 눈에 한 ‘작은 여자’가 들어온다. 샤워를 하다가 화급히 돌아온 듯 ‘자기 머리칼을 한 묶음 손으로 쥔 채’ 그녀는 ‘한참 동안 뭔가를 찾고 있’다. 굉장히 소중한 것인가 보네. 같이 찾아줄 생각으로 뭘 찾고 있냐고 묻는 화자에게 ‘몰라도 된다고’ 쌀쌀맞은 대답이 돌아온다. 화자가 한 말이 시에 쓰인 그대로 ‘뭘 그리 열심히 찾고 있냐’였다면 ‘작은 여자’가 뾰족하게 반응할 만하다. 화자 성정의 착함이나 말투를 알 리 없으니 발화된 말 그대로 받아들일 테니까. 애타 죽겠는데 호기심에 찬 구경꾼의 참견이라니!
무르춤해진 상황에서 화자는 ‘작은 여자’를 발견하기 전에 하던, 멍하니 생각에 잠겨 무심코 ‘손가락으로 모래밭에’ 글자를 새기던 짓으로 돌아간다. ‘내 생각의 절반은 몰라도 되는 생각’, 다른 이에게는 하찮을지 몰라도 내게는 너무 소중한,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것인,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말하고 싶지 않은, 그 생각이 화자를 바닷가로 이끌었을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화자는 생각에 깊이 잠긴다. 바닷가 모래밭의 모래들은 숱한 생명체들의 ‘하얗게’ 바스러진 유해. 때때로 그들은 돌아온다. 그들 모습 생생해서 웃음이 피어오른 채 일그러지는 화자 얼굴. 다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멈추지 않는 슬픔’으로 얼굴에 죽죽 금이 가는 화자, 눈을 감고 ‘검은 파도’에 출렁출렁 실려 간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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