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개구리처럼 앉지 마시고 여왕처럼 앉으세요”
―데니즈 두허멜(1961∼ )
―필리핀 어느 대학의 여자 화장실 벽에 쓰인 낙서
제멋에 살기를 잊지 말라, 멋 부리기를 잊지 말라.
세상은 여드름투성이 소녀에게 보상하지 않는다.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머리채에 광채를 내는 샴푸를 사라.
머릿결이 직모라면 파마를 해라.
제멋에 살기를 잊지 말라, 멋 부리기를 잊지 말라.
숨결은 박하 향이 나도록 하고 이는 희고 깨끗이.
손톱은 매니큐어 발라서 반짝이는 진주 열 개로.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웃음 지어라. 특히 기분이 더러울 때.
차를 운전하면서 급회전할 때에는 머리를 숙여라.
제멋에 살기를 잊지 말라, 멋 부리기를 잊지 말라.
욕망에 자신을 내맡기지 말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해야
사교춤 출 때 치맛자락을 추켜올릴 수 있지.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교수와 혼인하지 말고 학장하고 해라.
왕하고 혼인하지 백작하고는 하지 마라.
제멋에 살기를 잊지 말라, 멋 부리기를 잊지 말라.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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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한국어판으로 발행한 ‘2006 미국 올해의 가장 좋은 시’에서 옮겼다. 이 시선집의 편집자로 시를 선정한 빌리 콜린스(시인)가 쓴 서문 제목이 ‘시의 건초더미에서 찾은 75편의 바늘’이다. 해마다 거듭 탈락된 ‘건초더미’ 시인들의 불쾌감을 언급하며 그는 ‘제목은 기껏해야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고, ‘그럭저럭 읽을 만한 시’라는 시집에 독자의 손이 선뜻 가겠느냐고 눙친다.
여대생과 여왕처럼 변기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을까. 새침한 여대생도 고고한 여왕님도 거기서 거기일 화장실에서 취할 자세가 떠오르면서 빙긋 웃게 되는 화장실 낙서. 그에 촉발된 요즘 젊은 여성의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을 나열하며 언뜻 부추기는 모양새다. ‘멋 부리기’는 기본! 화장 안 해도 예쁜 나이라는 건 네 라이벌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몸을 가꾸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자해라. 그렇게 해서 기껏 멋진 여인이 돼도 아무 남자나 만나면 ‘꽝’이니라! 최고의 남자를 만나라. 좌식변기에서는 여왕인들 개구리처럼 앉을 수밖에 없다는 걸 명심해라.
결혼을 신분 상승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젊은 여인에게 결혼시장에서 상품 가치를 높일 지침을 이리 내려주시는 이는 아마 신붓감의 어머니이리. 젊은 여인들이여, 이런 삶에 완전 공감인가요? 여하간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는 건 바람직한 자세.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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